도란도란

"숭늉같은 글"

namaste123 2015. 6. 19. 09:03





"숭늉같은 글"



글쓴이: 조 영희81 (삼십대 중)



오늘도 역시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현대문명이 이렇고 저렇고, 이토록 바쁜 현대 사회 안에서 (‘현대’라는 말이 나에 글안에는 꽤나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가고 있다는 등의 글을 쓰다가는 이내 펜을 들어 힘을주어 큼직하게 X표를 그어 버렸다. 이걸 누가 모르나? 사람들이 이걸 몰라서 시행착오하나? 맨날 신문이나 평론가들의 글에서 즐비하게 나오는 말을 나는 왜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걸까?


문득 글을 쓰다가 멈추고 생각하게 되었다. 머릿 속에는 여러가지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떠다니고 있지만 도무지 붙잡을만한 것이 보이지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며칠도 되지 않아 별로 쓸 말이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보면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쉬운 일이 아닌것 만은 분명하다. 그 동안 썼던 글들을 돌아보자면 대부분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또는,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라는 계몽적인 느낌의 구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계몽적인 느낌을 희석시키기 위해 가끔씩은 ‘우리’ 대신 ‘나’라는 대명사를 이용하여 자기성찰 같은 느낌을 주어도 보았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라는 내용에 도달하고야 만다. 이런 시도가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유할 줄 아는자 로써 글을 쓰는 이상 자신의 삶의 철학과 이상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다만, 글을 써내려 가다가 보면 문득 느끼는 바가 있는데 뭔가를 너무 이상적으로 끌어 내어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라는 독자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글로 마무리되어 지곤 한다는데에 있다.


난 누구와 어떤 대화를 시도하려 하는 것일까? 내 삶의 철학과 영감(inspiration)을 섬세하게 적어내려 가기 보다는, 확성기를 입을 대고 왁자자껄한 시장통을 돌며 자신도 못알아듣는 말을 떠들어대는 식으로 글쓰기를 대하지는 않았었는지 나를 되돌아 본다. 꼭 교훈적이거나 아주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의 들뜨고 산만한 정신을 식혀 주고, 생존 경쟁에 치여 울적해진 마음을 달래주며, 마치 오랜 벗 처럼 조용히 다가가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시켜 주는 그런 '다정한 글'을 쓰고 싶다. 때론 복잡한 아젠다 없이, 뭔가를 배워야 한다, 바뀌어야 산다.. 등등의 압박감 없이, 소설 읽듯 편안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고향'과도 같은 글 말이다.


아직은 글 솜씨가 탁월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나를 믿고 싶다. 근래에 들어 한국의 고전문학을 시간 나는대로 틈틈히 읽게 되었다 (예를 들면 현진건의 빈처,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 이곳에서 한국책을 구하기가 쉽지않은 나 개인적인 여건상 책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읽고는 있지만 그래도 옛사람들에 글을 읽다가 보며는 배우고 느끼는 바가 가뭄뒤에 내리는 단비처럼 새롭기만 하다. 


옛 문인들의 여린 감성을 통해 들어나는 찰지고 감칠맛 나는 글을 읽다가 내가 쓰고있는 글을 읽자며는 화롯불에서 갖익은 따끈 따끈한 군고구마를 먹다가, 느닷없이 차거운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는 맹숭맹숭한 기분이 든다. 학창시절 때 교과서에 간혹 등장하는 고전문학을 감동을 느껴가며 읽어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글을 쓰는 나에 입장에서 다시 찾아 읽어보는 옛 작가들의 글에는 깊은 무언가 가 있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울림이랄까.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소박한, 삶에 애틋함이 있다. 툇마루 한편아래 얌전히 놓여있던 우리 할머니에 고무신처럼. 


컴퓨터가 없던 그 시절의 문인들은 아마도 누렇고 투박한 종이 표면 위에 가 닿는 펜촉의 느낌을 고스란히 손 끝으로 느껴가며 글쓰기에 전념 했었으리라. 한밤중에 작은 촛대 한자루 위로삼아, 간간히 들리는 귀뚜라미와 부엉이 우는 소리 친구삼아 한줄씩 한줄씩 그렇게 글을 써내려 같었으리라 그에 작고 초라한 서재는 어느덧 삼천대천 세계로 맞물리어 거기로 흐르는 '생명의 강'을 그이에 한결같은 열정으로 한데모아 손에 쥔 펜촉을 통하여 고스란히 부어 내었으리라


누군가에 눈에는 비록 웅색하고 초라한 방 한칸 일런지 모르겠으나, 그가 그림그려 나가는 그에 우주안에는 세상 그어느 곳에서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진리에 향이 흐른다. 그런 경이로운 순간 순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맛보고 싶은 마음에 글의 초고는 언제나 종이와 펜을 이용하고 있다. 비록 귀뚜라미도 부엉이도 없이 컴퓨터에서 흘러 나오는 뭔가 건조한(?) 가락이 내 글의 배경 음악이 될지라도 말이다.


컴퓨터 자판으로 후다닥 치는 것보다는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 모르나, 종이와 펜을 사용하여 글을 써내려 감으로써 내 나름의 창조적 과정(Creative Process)를 양껏 누려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더욱이 자판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막상 펜을 잡고 뭔가를 쓰려고 하다가 보면 국어나 영어의 철자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아 이번을 기회 삼아 종이위에 펜대를 굴려가며 촌음을 아껴 사색하며 글을 써내려 가는 그런 여유함을 맘껏 즐겨보려 한다.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만 굴뚝 같았지, 작가로써의 나는 아직 달구어지지 않은 프라이팬과도 같다. 언젠가 부터 어떤일을 시작하던 늘 준비는 되지도 않은 채 욕심만 한껏 내다가는 이내 용두시미로 끝을 내고는 했다. 그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책을 써서 나의 이력서 한 귀퉁이를 채우리라는 헛 생각들. 하지만 이제는 갓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로 돌아가 글쓰기를 통해 "세상 그너머에 세상"을 탐구하며, 그 과정들을 세상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 '진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감동 있고 여운이 있는, 숭늉 같이 구수하고 투박한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