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벽(壁), and My Journey Home" (1/40)

namaste123 2014. 2. 24. 14:44




"벽(壁), and My Journey Home" (1/40)


글쓴이: 이화80 (삼십대 초)




한문 공부


요즘은 아침마다 한자를 익히고 있다. 어떤 날엔 딱 한 글자 만을 공부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초조해지는 마음은 이제 거의 없어졌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초조해 하고 

긴장해야 했던 나의 지난 삶, 그리곤 현실을 통하여 가감없이 들어나 버리는 초라한 내모습에 

또다시 가슴앓이해야 했던 그모든 짐들을 나는 이제 "놔"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 단지 한 글자를 공부하더라도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제 그로써 

족하다. 아직은 보잘것 없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한 스텝은, 훗날 내가 추구하는 그곳으로 나를 

이어주는 든든한 계단이 되어질 것임을 나는 믿는다.



늘 공부한 글자는, 벽 벽(壁) 자다.


한자 공부를 하면서 즐거운 점 중의 하나는, 파자, 합자를 탐구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경구가 한자 공부에서는 정말 뚜렷하게 들어나고는 한다.


주검 시(尸), 입 구(口), 매울 신(辛), 그리고 흙 토(土)로 이루어진 벽 벽(壁) 자. 흙 토 변을 

제외한 부분(辟)은 물리칠 벽, 또는 피할 피 라고 불린다.





Interesting~! 하나의 글자가 맞서 싸워 물리친다는 것과, 맞서지 않고 피한다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니! 게다가 그 글자는, 주검 시와 입 구, 매울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자와 산 자, 

그리고 매운 맛. 이것들이 대체 물리친다는 뜻, 피한다는 뜻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일까?


그에 대해 내 경험과 인식에 대입하여 나름 짐작해 본다.


나는 달고, 쓰고, 짜고, 시고, 매운, 소위 5가지 맛 중 쓴 맛, 신 맛, 매운 맛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짠 맛은 음식의 맛을 돋구어 주는 듯한감이 있어 좋아하다 보니 어느 새 길들여져 버렸고, 단 맛은 즉각적인 

쾌감으로 내게 보상을 해주는 데에 비해 다른 맛들은 내게 있어 맛있기보다는 외려 고통스러운? 맛들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다시 벽 벽 자를 맛과 연결시켜 보자면, 벽(壁) 자에 있는 흙 토 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뜻한다고 

본다. 주검 시와 입 구 자는, 우리가 맛을 보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process를 상징한다 

보고 입 구는 살아있는 자, 즉 맛 보고 있는 자를 의미하고… 주검 시는 죽은 자, 먹히고 있는 자가 되겠다.


먹고 먹히는 대상을 인간삶에 대입해서 보면 소름 끼치는 말이겠지만, 실상 Life는 삶과 죽음, 그 둘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순환고리의 연속이다. 하나의 죽음은, 다른 하나의 삶을 support 한다. 그렇기에 죽음 없이 

삶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죽음이란 결국, "삶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필, 왜이런 매울 신 자가 벽 벽(壁)안에 있는 숨어있는 것일까?



벽의 느낌(sense)


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벽(장애물)들이 우리에 앞을 켜켜이 에워싸 우리 가는길을 가로 막고 있을 때가 있다.

제법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어 보이는 약간 "매운맛"의 벽이 있는가 하며는, 때로는 정말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감당 불가한 몹씨 "매운맛"의 벽도 있다.



Separation의 Symbol과 Fight or Flight.


그런데 왜, 벽을 나타내는 말에" 물리친다"는 것과 "피한다"는 두 가지 뜻이 함께 있느냐는 말이다.


벽이 있다 함은, 내가 있고 남이 있다는 소리이자, 나와 남을 분리해서 본다는 말이겠다. Separation based 

world viewa world of Duality. the Law of Polarity... 이러한 Black and White, Yes! or No!를 

꾸준히 선택해야만 하는 만만치 않은 우리들의 삶.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인생의 벽에 부딫치게 됬을때 

이것을 해결하는 본능적인 방법은 바로 위에 언급한 이 두 가지이다. 


Fight or Flight. 물리쳐 이기거나, 피해 도망가거나.


그런데 문제는, 싸워 이길 힘이 없다면 그에게 남은 한수는 결국 죽어버리거나, 도망쳐 버리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두 가지의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습관 말이다. 이것은 특히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맹수들의 생존법 이기도 하다. 


Fight, or Flight.

맞서 싸워 이기거나, 도망치거나.

죽이거나, 죽거나.



A New Earth


세상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세상(Known universe), 아직은 알려지지 못한 미스테리한 세상 

(Unknown universe) 그리고, 알 수 없는 세상(Unknowable universe)으로 나뉜다 들었다.


난, 세상은 잔인한 것이라고 배워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세상은 잠재적으로 내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위험 천만한 곳이니 다만 최선을 다해 그세상과 맞서 싸워 이겨야만 하는 곳 

이라 의심없이 믿어 왔다. 일분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나는 나의 삶 지난 삼십여년을 살아왔다. 


Seeing is believing이 아니라 실상은, "Believing is Seeing" 이 진리에 더 가까운 표현이다. 

보이는것 만이 다라고 철통같이 믿었으니 세상(유니벌스)은 내가 믿고 바라는 "그대로" 가감없이 

나의 삶을 통해 반영하여 주었던 것 이었다, Like attracts like...


주검 시 와 입 구, 매울 신. 그게 나의 "known" universe 였던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참 초라하기

짝이없던, 그래서 더욱 허무할 수 밖에 없었던 지난날 나의 세상살이 였다...


그러다가 Unknown universe의 존재함을, 내가 몰랐던 세상의 건재함을 배우게 되었다. 

본연의 나 그 나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을 그런 세상 말이다. 그 존재함을 깨끗이 

잊어버린 채, 세월속에 누렇게 퇴색되어 버린 낡은 안경을 나는 내의식의 눈으로 믿었던 것이다.


무지(Spiritual Ignorance)했던 나는, 가지많은 나무되어 세상이라는 거친 세파에 이리저리 

잘도 휘청여 왔던 것이다. 죽이거나 도망가는 옵션만이 다가 아닌, 그것을 뛰어너머 Grace와 

Love(Impersonal Love)가 실재하는 세상은 있었다.


사실이 아닌 모든 것은 결국, 허상 (illusion) 이기에 "진실의 빛" 앞에선 흔적도 없이 녹아지고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My Journey Home


작은나(personal-self)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다. 


고양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고양이라는 실제의 존재를 "묘사"하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알고" 있는 나 또한, 본래의 나(The Divine-Self)는 아.니.다.


지금 내가 "나"라고 알고 있는, 육신의 다섯감각을 통해 걸러져 들어오고 분해되어 쪼개어진 정보의 

파편들이 내가 다는 아니다. 나를 이루고 있는 이 물질들은, 우주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있었고, 

지금현재 이 "나"를 이루고 있는 물질들은 광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그것과 하나를 이루고 있다. 


동시성 이론에서도 보여주듯, 우주와 나는 synchronicity를 이루며 춤을 추고있다. 작은 나로는 아직 

이해할 수 없으나, 본연의 나는 삼차원의 Duality를 품고 또 너머서 이미 oneness"를 이루고 있다.


“Ithaka”라는 Constantine P. Cavafy의 시는, 바로 이런 작은 나(my personality-self)에게서 

본연의 나(My Divine-Self) 로 가는 Soul Journey를 자상하게 표현하고 있다.


As you set out for Ithaka

hope the voyage is a long one,

full of adventure, full of discovery.

Laistrygonians and Cyclops,

angry Poseidon—don’t be afraid of them:

you’ll never find things like that on your way

as long as you keep your thoughts raised high,

as long as a rare excitement

stirs your spirit and your body.

Laistrygonians and Cyclops,

wild Poseidon—you won’t encounter them

unless you bring them along inside your soul,

unless your soul sets them up in front of you.


Hope the voyage is a long one.

May there be many a summer morning when,

with what pleasure, what joy,

you come into harbors seen for the first time;

may you stop at Phoenician trading stations

to buy fine things,

mother of pearl and coral, amber and ebony,

sensual perfume of every kind—

as many sensual perfumes as you can;

and may you visit many Egyptian cities

to gather stores of knowledge from their scholars.


Keep Ithaka always in your mind.

Arriving there is what you are destined for.

But do not hurry the journey at all.

Better if it lasts for years,

so you are old by the time you reach the island,

wealthy with all you have gained on the way,

not expecting Ithaka to make you rich.


Ithaka gave you the marvelous journey.

Without her you would not have set out.

She has nothing left to give you now.


And if you find her poor, Ithaka won’t have fooled you.

Wise as you will have become, so full of experience,

you will have understood by then what these Ithakas mean.



저 '이타카'를 향해 나의 뜻(Not My Will, But Thine.)을 드높게, 그리고 굳건히 세우고 

가는 한 나는 외눈박이 거인들을 그리고 성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만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설상, 그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기왕이면, 이 여정이 충분히 오랜 여행이기를 나는 바란다. 이 여정속에서 넘치게 될 full of 

adventure, full of "self-discovery" 이것이 나를 더더욱 풍요롭게 할 것임을 내가 안다. 


기나긴 소울여정 중에서 마침내 나는 생명의 그 오묘함을 맛볼 것이고, 우주의 저 원대한 

신비의 가르침을 배우게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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