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12척의 배가 아직 남아있다"

namaste123 2012. 12. 24. 09:09




"12척의 배가 아직 남아있다"


글쓴이: 영희81 (삼십대 초반)




최근에는 독일에서 공부하는 막내 동생으로 부터 글을 e-메일로 주고 받으며 그의 '쉽지않은' 성장통(Growing Pains)을 돕고 있는데, 동생이 조금씩 기운을 차려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 이번 동생의 일로 우리 가족이 오랜만에 합심을 해서 서로를 돌봐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나만 막냇동생을 챙겼던 것이 아니였다. 무뚝뚝하고 특히 가족일에는 무관심하기 짝이없던 둘째 녀석도 막내에게 자주 연락해 오고, 최근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한권을 선물로 그곳에 보내왔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이 녀석도 이런 면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사는지 나는 도통 모르고 산다. 워낙 먼저 연락을 취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예전부터 크리스마스 때에도 카드를 보내는 것은 언제나 나 혼자 였다. 그 녀석에게 크리스마스카드나 다정한 전화 한 통(?)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렸을 때는 무척 자주 싸웠지만 그 만큼 가까웠고 대화도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멀어지고 서먹해진다는 것은 조금 슬픈 일 같다. 어머니 이야기로는 녀석이 회사를 오래 전에 그만두고, 특별히 직장활동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말씀으로는 도통 그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최근에 일본어를 배운다고 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만 짤막하게 전해 들었다. 밖에서 보기엔 도통 뭘하려고 하는지 모르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나름 생각도 있고 그에따르는 고민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전에는 그가 너무 가벼워 보이고 철없어 보였다. 사실 지금도 조금은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어른의 나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내가 한마디 할 수 있는 시절이 지나갔다. 그래서 그 친구가 선택하는 그대로 존중하고 어느선 그 밖에서 그의 소울여정을 지켜보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내가 안다. 사실 뭐, 어렸을 적부터 그닥 믿음직한 누나는 아니였다...


그래도 동생의 성격 어떤 부분은 참 부럽기도 하고 좋다.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그는 다른 누군가의 기분을 맞춰주려 애쓰는 성격이 아니고, 감정적으로 끈적 끈적한 성격도 아니였다. 나에 비해 호불호가 확실하고 자기몫은 남의 눈치 상관없이 확실하게 챙기는 성격이랄까. 제법 유머도 있었다. 기회가 되면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데, 예전처럼 허물없이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굴도 못 본지 제법 오래되어 버렸고 이젠 뭔가 서먹하다. 특히 지난 20대에 서로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조금 더 멀어졌던 것 같다.


둘째 동생은 어렸을 때 참 '순진한 아이'였다. 내가 장난으로 거짓말을 해도 곧이 곧대로 다 믿는 그런 아이였다. 말도 제법 많았고 무엇보다 장난끼가 넘쳐 흐르는 재미있는 아이였다. 그런 그가 커가면서 과묵해졌다. 도시적이고 세련되어지는 것은 멋져보이나, 뭔가 살가운 느낌이랄까? 무언가 가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현제의 모습이겠지만, 어렸을 적에 내가 보았던 그의 순진한 모습, 여린 모습은 지금도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을 것 같다. 다만 마음이 약해 겉으로는 안 그런척 하면서 사는 것 같다. 


동생은 사실 나보다 훨씬 "예술적인 사람"이다 느끼고는 한다. 나는 강력한 의지를 억지로라도 발동시켜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지만, 녀석이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서울의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들이나, 이집트와 터키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내가 미처 잡아내지 못하는 그 어떠한 감수성을 가진 친구인것 만은 틀림없다. 마치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 다니듯이, 춤을 추듯이 시공을 잡아내는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그의 가슴 깊이 어덴가 자리하고 있음을 그의 작품들을 통해 나는 느낀다. 그런 그의 예술적인 특성을 가지고 빡빡하고 직선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니 여러모로 힘들지 않았었을까 생각도 해본다.


한때는 그래도 우리 집안에서는 그가 장남인데, 뭔가 참 무책임한 삶을 산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집안에는 왜 이리 믿음직한 남자가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또한, 내가 좋은 표본이 못되 동생들도 이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종종 일었다. 가끔씩은 나도 듬직한 오빠가 있고, 사회생활을 잘 하는 그런 형제가 있어 그를 보며 나도 힘을내서 함께 따라갈 수 있는 어떤 건강한 표본이 내가족 중에도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늘 동생들에 앞서 삶을 살아내고 그 모든 모습들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맏딸의 입장이 여러모로 부족한 내게는 커다란 짐이 되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둘째는 내가 뭔가 부족하거나 실수한 일들에 대해서는 이때다 하여 칼퇴를 내려 치듯, 냉정하게 사정없이 찔러대기 때문에 함께 지내면서 마음이 괴로운 적도 많았었다. 지금은 꺼꾸로 너무 왕래가 없어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며는 차라리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이러한 관계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라는 생각도 든다. 삼남매 중 우리어머니의 구미에 딱맞게 번듯한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을 팡팡 벌어들이는 자식이 없기에 죄송한 마음이지만, 우리 삼남매는 셋 모두 매우 일반적인 길을 걷기는 힘들거란 생각이다. 자신만의 활로를 찾아 자신만의 '가슴뛰는' 길을 걷는것이 최선의 삶인 사람들이다 싶다. 그리고 어쨌든 내가 첫째로써 바르고 모범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최근들어 많이 들고 있다. 둘째가 나를 그리고 내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좋아하던 그렇지 않던, 본의 아니게도 나의 생각과 삶이 그의삶에 조그맣게 라도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나의 지난 삶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나를 잘 따르는 막내는 말할것도 없고 말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리고 현실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는 마음이 긴장되어 밖에나가 돈을 벌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식으로 노력한 들 돈이 벌릴 것 같지는 않다. 또 뭔가 좋아하고 그일을 정말 사랑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 내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터 도망치려 이리저리 발버둥치는 것일 뿐 이기 때문이다.

또한

애써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에 마음(가난하고 낮은의식, Poverty Consciousness) 쫒기다가 보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자신을 자꾸 헐값에 팔아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난 얼마간의 뼈져린 경험을 통해 알았다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의 방향과 방법에 무언가 '변화(The Shift)'가 있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중요한것은, 상황이야 어찌되었던 내 자신을 우선 존중하자. 보듬아 주고 세심하게 살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와 내삶의 여정에 단단한 믿음(Faith)을 갖고,

용기내여 마음에 여유를 되찾자. 예쁜 꽃 한송이 앞에 놓고, 녹차잎이 우려져 나오는 모습을 가만히 '들어보자'. 내게도 아직, 그 '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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