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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있음에: "조카들과 과학관을 다녀와서"

namaste123 2018. 3. 30. 01:10



오늘이 있음에: "조카들과 과학관을 다녀와서"


글쓴이: 이 영희81 (삼십대 중)



오늘은 셋째 동생과 조카들과 야외로 나가려고 했지만 날씨가 추워져 과학관에 가기로 했다.


동생의 차로 과학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무슨 소리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동생이 조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갔다.

 

먼저 내린 둘째 조카가 떨어져 있던 돌을 주워 차에 던졌고, 그 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분이

조카에게 고함을 질렀던 것 이었다.


조카는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 버렸고 동생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찌그러진 차의 상태를 

확인 한 후에 보험처리를 위해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조카가 던진 돌은 나의 두주먹을 포갠것 처럼 꽤 커서 돌을 왜 차에다 던졌을까? 하고 놀랍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동생이 하는 말이 돌이 주차한 차 옆에 놓여있기에 위험해 보이니 아이가 

무심코 던졌는데 그게 바로 옆에있던 차에 부딪혔을 거라고 말해줘 그때야 가서 이해가 갔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난 직후 조카에게 너무 혼내듯 말한 것 같아서 조카도 놀랐을 텐데 우리가

너무 혼내고 비난하는 것처럼 말한 것 같다며 엄마인 네가 조카 마음을 달래고 알아듣게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조카가 커다란 돌멩이를 차에 던졌다고 생각해서 그 일로 어리둥절하게 생각했지만 

차에 타고 있던 분이 고함을 지르고 어른들마져 나무라니 조카는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운전자분 또한 가족이 차에 타고 있었는데 누군가 차에 돌을 던져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들또한 놀랐을 법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기 이전에 차에서 내려 

상황을 먼저 이해했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학관에는 많은 아이들과 그들 부모들로 붐볐다.

 

하나하나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는데, 조카들이 여러 개의 공을 통로위에 놓고 한꺼번에 굴렸는데 곡선의 공이 가장 빨리 

도착한 것 이었다. 처음보는 광경에 설명을 읽어 보니 직선보다 곡선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이라는 것 이었는데, 원이 한 직선위를 굴러갈 때, 원 둘레 위의 한점이 그리는 

자취를 사이클로드 곡선이라고 한다.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거리인 직선 경로를 따라 가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지만, 사이클로이드 곡선위에서는 가속도 때문에 공의 속도가 더 빨리 증가하여 

직선에서 보다 먼저 도착 지점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직선보다 곡선이 빠르다니, 또 그것을 직접 보다니 놀라웠다.


그동안 상대에게 전하는 말과 행동도, 목표를 향해 다가감에도 늘 직선이 꾸밈없이 옳다고 

생각 했었는데, 상대를 위해 돌려 말하거나 행동하는 자세가 오히려 진심이 더 잘 전달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조금 돌아 가게 되더라도 목표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로 나와서 조카들은 뛰어 놀았고 나와 동생은 우리의 삶에 대하여, 아이들에 대하여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과의 소통에 대해서는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동생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상대에게 전할 때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우선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시내로 돌아왔다. 한껏 뛰어 놀던 조카들은 잠이 들었고 마트에 

도착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식당에 갈 때 조카들이 자고 있으면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동생의 핸드폰을 두고 가서 일어나면 전화를 할수 있게 했었는데 오늘은 나의 핸드폰이 꺼져

있는 상황이라 첫째 조카를 살짝깨워 금방 다녀오겠다고 말을 하고 빠르게 볼일을 보았다. 


계산하던 동생은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먼저 차로 갔고 내가 계산을 마무리 지었다. 동생이 

도착하니 둘째 조카가 울고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도 일어나면 늘 엄마를 찾고 울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엄마가 없어서 많이 울었던 모양이었다.


돌아오며 여담처럼 들려주던 이야기는 둘째 조카가 그사이 많이 울었고, 첫째 조카가 습기가 찬 

창문에 ‘도와주세요’라고 썼다는 것이었다. 창문도 열어 보고 경적도 울렸다며 다음에는 핸드폰을 

꼭 두고 가라고 했다.

 

어른들은 잠시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공포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며 다시 이런 일이 없을 거라며 

안심 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을해서 함께 먹었다.


동생은 혹시 셋째를 낳게 된다면 그 모유를 둘째에게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아까 

놀이터에서 했던 이야기들과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둘째 조카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 준 

것 같아서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아이로 바라보며 그 눈 높이에서 그들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잘 헤쳐 나갈 거라 생각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이니 말이다.




오늘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