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악마의 올가미를 치고 나오다."

namaste123 2013. 7. 19. 01:19


 

내게 쓰는 편지:


"악마의 올가미를 치고 나오다."



                                                                                                                                                글쓴이: 영희92 (이십대 초)





<’악마의 올가미’>


해리포터의 1편을 보면 해리포터와 그의 친구들이 볼트모트를 찾아 모험을 하는 중 처음 마주치게 되는 것이 ‘악마의 올가미’라는 것이다. 그것은 발버둥 치며 저항하면 할수록 더 조여드는 괴물식물 같은 것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온 몸에 저항하는 힘을 빼고 마음의 평정을 차분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 악마의 올가미라는 것은 마치 Karma와 비슷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Karma, 업이라는 것은 저항하면 할수록 더욱 더 옥죄여 들어 오는 것이 흡사 그 영화속의 ‘악마의 올가미’라는 것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는 지혜롭게 긴장을 풀고서 Surrendering..함으로 그 악마의 올가미를 무사히 빠져 나오지만, 불행히도 론이라는 친구는 더욱더 긴장과 두려움에 빠져 들어감으로 해서 그올가미속으로 더욱 갇혀져 지게 되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라는 친구가 기억해 낸 것이 하나 있는데, 악마의 올가미는 두려움에 긴장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조여 들게 되고 그 올가미는 무엇보다도 빛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르미온느는 빛을 쏘아 결국 론은 그 악마의 올가미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참, 흥미로운 부분이다. ‘긴장’을 빼고 Relax 하여 Surrendering.. 할 때 마침내 우리는 그 악마의 올가미로 부터 벗어날 수 있다 라는 사실이 내게는 굉장히 흥미롭고 인상깊게 다가온다.


그리고 "Wisdom", "Power", "Love"라는 이 세 가지의 미스테리어스한 힘을 기억해 볼 때 해리포터는 Power를 헤르미온느는 Wisdom을 그리고 이 론이라는 아이는 Love를 담당하고 있다는 설정을 하고 이것을 영화의 전개에 연결지어 가며 감상하였다. 무엇보다도 재미 있었던 발견은, 그 세아이의 유형중 내가 가장 가치를 두지 않았던 유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론타입의 유형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Love를 맡은 론이라는 아이의 독특한 특성이 사실 이아이들의 각기 다른 성질의 조합을 매끄럽게 도와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라는 사실이었다.



<신비한 체험, Experience>


사랑의 문이 스르르 열리는 듯한, 굉장히 신비한 체험을 할 때가 있었다. 작년, Toronto downtown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때 나는 어떤 문을 통과하는 듯한 체험을 한적이 있다. 무언가 내 삶의 여정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입학시험을 통과 하는 듯한? 어째든 묘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떤 독특한 경험 말이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스르륵 다른 차원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것 같은 체험이었다. 그경험 뒤에 느꼈던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전과는 다르게 내 일상적인 삶에 그 어떤 여유?.. 같은 것이 생겼다는 것이다. 과거에 나를 그토록 혼란스럽게 하고 나의 존재감에 치명타를 주던 두려움이랄까 초조하게 타들어 오던 어떤 절박한 긴장감이 언젠가 부터 나의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나를 옥죄여 오고 올가미 씌우던 많은 것들이 언젠가 부터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자동 이동되어 버렸다. 그대신 근거를 아직은 알수 없는 묘한 평온함을 어느정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얼마간은 말이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무언가 '벅찬 사랑'이 넘쳐 오르는 듯한 경험을 그당시 몇번 느껴본적이 내게 있었다. 그 때 이것에 대해 나혼자 굉장히 Exciting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하나 기억나는 체험들 중에 하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케나다에서 처음으로 지나가는 행인 누군가 내게 길을 물어 보는 경험도 했었다.



<길잃는 누군가가 내게도 길을 물어 보더라.>


내게 처음 일어난 매우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들이라 나에게 소중한 분께 횡성수설 하면서 나의 이런 묘한 체험을 설명하던 기억이 난다 ㅎㅎ. 오늘은 Wayne Dyer 라는 뉴에이지 구루중 한분의 인터뷰 말씀을 들었는데 무언가 형이상학적인 경험을 설득력 있고 더 큰 그림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 Experience를 통해야 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Experience를 통하여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배워 나간다라.. 흠



<’좋다, Good’이라는 것 마져도 정화해야 한다!>


‘Good, 좋은것’이라는 감정 또한 정화해야 하는것.. 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Zero’ 즉 ‘공’의 상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기도 하며 또한 동시에 모든것이 존재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좋던 싫던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는 것은 결국 또하나의 혼돈과 전쟁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그 어느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간의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나는 ‘좋은것, Good’도 정화를 해야 하는 극복의 대상이라는 지혜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요얼마간 내가 마주해야 했던 쉽지 않았던 경험들에서 깨달았던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좋은것, Good’이라는 것이 정화하기 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여직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이 "좋다"라는 관념이 어느새 내안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 버려 나의 삶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닯았다.



<심플하게 'Delete' 키를 누르자>


저항하는 거친힘을 빼고, 심플하게 Delete 키를 누르는 법을 배우자..


성경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지만 여기서 뜻하는 것은, 이해도 되지 않는데 억지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본다. 그건 사랑이라기 보다 사랑하는 척 하라는 것과 다른바 없다. 성경의 뜻은 원수라는 그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을 내안에서 기르고 그 현실과 상황을 그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바탕의 이유를 묵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난 이 현실을 통하여 나는 나를 조금더 알게 되고 내가 가는 길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나의 선생이라는 뜻이다.


어제보다 한층 더 성숙해질 나를 생각하며 지금 이순간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고, 나의 꿈을 가꾸어 가고 있는가?.. 에 집중 하는 것은 언제나 현명한 선택이다. 이세상에 가치없이 이유없이 막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익히 배우고 들어왔다. 결국엔, 모두의 성숙을 위하여 서로 서로 각자의 역할을 맡아 영희와 철수의 삶에 나타나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뿐 이다. 그리고 그 역할의 필요성이 더이상 없어 지며는 모든 것은 결국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울퉁불퉁 들어난 물질의 차원을 넘어 존재하고 있는 더 큰 그림을 보는 힘을 기르고 내앞에 일어난 나의 현실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한 뒤 그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그 상대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기에 그는 '그'일 뿐이다. 아무런 나의 지나간 감정의 개입과 아젠다 없이 상대를 대하고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들어난 나의 모습을 바라보기 하는 것이다. 들어난 그모습들을 통하여 나는 나라는 '진짜의 나'안으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 가게 된다는 뜻이라고 나는 본다.


또한가지의 깨달음이 있었는데 이것은 사랑이란 감정의 차원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정도를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최근엔, ‘속성으로’ ‘아주 빠르게’등등 흔하게 사용 되어 지는 이러한 표현들을 Spiritual한 삶의 시각에서 바라본 적이 있었다. 무언가를 꾀부려 더 많이 이득을 갖을수 있고 더 쉽게 성취 할수 있다고 주장하며 팔고 사고 또 가르치고 하는 것은 결국에는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서 내가 누구누구 보다 더 잘났음을 외쳐대는 것과 다른바 없다고 본다. 어떤이들은 다른곳 보다 더 빠르게, 더 쉽게 가르친다 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이러한 급한 물쌀을 마추칠 때며는 내안 한편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들려 오고는 한다. "아! 그래서 ‘정도’를 가라는 말이 있구나.." 


정도를 잃어 버린 삶에는 오직 달콤하게 코팅된 설탕뒤에 들어나게 될 차가운 자신의 운명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러니?>


과거에 노자, 공자, 맹자, 장자 등 위대한 선각자들이 많이 존재했던 이 동북 아시아라는 땅이 아닌, 산업이 발달하고 남성성의 특성이 두드러진 나라인 북미에서 Spiritual 진화의 물결이 왕성하게 활성화 되어 있다 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한가지 선진국이 선진국 일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그저 물질적인 삶이 풍요롭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지난 얼마간의 그곳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깨달은 바가 있다, 들어나고 숨어있는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그 어떤 질서'가 있음을 나는 실제로 느껴 보았었다.



<스스로 변화해야겠다는 마음>


호오포노포노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G20 정상회의등의 회의들이 지구촌에 들어난 난제를 깨닫고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열리고 있지만 문제는 그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 자체가 스스로 변하려 한다기 보다는 밖에서 그변화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세상의 변화나 자기주변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먼저 자기내부에서 스스로 변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안에서 이루어짐은 밖에서도 이와 같이 이루어 지리라는 가르침이 떠오른다. 

"As Within, So Without."

사실 저런 올가미란 다름 아닌 영적인 무지와 정서적인 빈곤에서 비롯되 들어난 무수한 가시덤풀중 작은 한가지일 뿐 아닌가? 


중요한 것은 "지금 이순간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이다.










'도란도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내가 풀어야하는 숙제다"  (0) 2013.10.05
"머무르지 않는 자"  (0) 2013.09.19
"동앗줄을 내려주는 사람...  (0) 2013.05.09
"나(Myself) 일병 구하기"  (0) 2013.04.04
'선물(Gift), 그리고 나의 기도'  (0) 201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