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나(That I Am)를 찾아 떠나는 여행" (1)

namaste123 2011. 6. 10. 08:22




"나(That I Am)를 찾아 떠나는 여행" (1)




글쓴이: 영희80 (삼십대 초반)



안녕하세요.

요즘 부산은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들어서 햇살도 많이 강해졌는데 토론토는 비가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봄의 해가 더 반가워질 듯 하네요.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 새 2주가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저의 예상과 많이 다르게 펼쳐졌습니다. 오는 비행기에서부터 평소엔 겪지 못했던 비행기 멀미를 하는 바람에 열세 시간 남짓을 너무 괴로워하면서 도착했더랬습니다. 두통부터 시작되던 초반엔 아픈 것에 신경 두지 않고 다른 것에 focus하려 노력했는데 그게 subconsciously 외려 아픈 것에 focus를 둔 것이 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점점 더 아파오면서 그런 노력조차 못하게 되는 걸 보면서 제 정신력이 너무 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다가 여태 제 몸(과 마음)을 너무 당연시하며 소홀히 다룬 것이 드러나는구나 싶더군요.
 
아파서 너무너무 괴롭기는 했지만 엎드려 있는 제 위로 담요를 살포시 더 덮어주시고 가시기도 하며, 혹시 체한 것이 아닐까 하며 제 손을 꼭꼭 주물러 주기도 하시던 스튜어디스 분의 친절에 정말 감동하는 시간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혼자 괴로워하고 있을 땐 뭔가 고통이 올라오는 것을 보를 쌓아 막아 두어 버티고 있던 듯 하던 것이 동생이, 그리고 스튜어드와 스튜어디스 분들이 제가 아픈 것을 notice하고 care해주기 시작하면서부터 막아 둔 보가 터지듯 아픔이 더 커지는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전혀 그런 식의 attention은 바라지도 않았었는데 막상 그렇게 attention을 받게 되니 그것에 제가 부응하게 되더군요.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런 attention에 부응하는 듯한 제 subconsciousness - 또는 또 다른 제 자아 - 의 모습이 pathetic했지만 그게 제어가 안되는 듯 싶었습니다.

Awareness가 오기만 해도 그런 mind는 사그라지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physical body의 반응까지 일단 와 버리면 인지만으로는 instantly 되돌리기 힘든 것일까요.


 
대략 열흘 정도는 캐나다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입술 주위의 trouble들이 더 심해져서 입술 전체가 부르트고 난 후 껍질에 덮여버리듯 하는 증상이 반복되었더랬습니다. 얼굴에도 두드러기가 나서 많이 고생을 했었구요. 15일에 제 동생의 함을 제부될 사람과 제 동생이 서울에서 가지고 와서 받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그 날까지 증상들이 악화일로를 걷다가 요즘은 많이 나아진 상태입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기로는... 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앞으로의 제 동생의 life pattern이라 예상되는 궤적과 제 것을 상상,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닌가 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이제라도 "정상적인" pattern을 따라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거나... "불투명하고 비정상적인" pattern을 찾아가거나를 결정해야 할 테니까요. 함을 받는 날 처음 본 제 동생과 제부의 둘이 함께 웃는 모습을 보니 많이 부럽기도 했고... 여기 저기서 선을 보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라는 설명을 구구절절 듣고 있는 저를 보면서 또 다시 제 속의 망설임과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3년만에 다시 본 한국은 제 기억과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불과 3년일 뿐인데도 그 동안 정말 그렇게 많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제가 기억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 둘 다 인 것 같기도 합니다 ^^ - 처음으로 느낀 것은 나무가 참 크고 많아졌다는 것, 바닷물이 참 맑다는 것, 지나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참 잘 나누고 잘 웃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산의 집이 이기대라는 곳과 매우 가까운데 산과 바다가 맞닿은 산책로가 쭈욱 몇 km에 걸쳐 펼쳐진 곳입니다. 그 곳이 몇 년에 걸쳐 산책로 공사를 했었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오륙도까지 다 완공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 길을 걸으면서 우리 나라가 참 아름다운 곳이구나- 하는 걸 느낀 것도 모든 것이 익숙한 여기서 가족들과 같이 그냥 편하게 지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한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설거지도 손 못 대게 하실 정도로 계속 쉬라고만 하시고, 제가 번듯한 옷이 없다며 백화점만 가면 비싼 층에서 제 것을 잔뜩 사주고 챙겨주시기에 여념이 없으시고, 무엇이 먹고 싶다, 가고 싶다는 기색만 보이면 어디든지 데리고 가서 먹이고 보여주고 싶어하시는 부모님과 있으면서... 감사함과 죄송함이 범벅이 되어 또 다시 마냥 자라지 않은 '딸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저를 보았고,
 
휘황찬란한 백화점과 거리를 다니면서 그 속에 휩쓸려 외관을 꾸미기 위한 소비, 과시를 위한 소비, 소비를 위한 소비에 관심이 가게 되는 저를 보았습니다.
 
몇 백만원이 우습게 쓰이는 백화점 명품관이 있는가 하면 얼음도 없이 소쿠리에 올려둔 생선을 팔며 하루 종일 땡볕 아래 있어야 하는 길거리 시장도 있고... "평균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또는 생존을 위해서 하루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00사의 본당과 암자들을 돌아보면서는, 선계가 있다면 이런 곳일까 싶은 고적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는가 하면 절이라는 sacred한 장소에도 여지없이 들쑤시고 들어와 있는 돈냄새 풍기는 장면들, 수행자가 가질 법한 이미지와 정 반대의 편협함과 anger를 가득 담은 사람도 마주쳤었습니다.
 
 

비록 겉핥기에 가깝게 몇 군데 다녀본 것이 다이지만... 이 곳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미와 추, 정과 동, 부와 빈 등의 극단들을 같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물질주의의 극단으로 발달해가는 과정에 있는 곳이 아닌가 했습니다. 서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살고, 중산층은 상류층으로 진입하기 위해 살고, 상류층은 물질적 풍요를 즐기기 위해 사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 삶의 모습들이 각자 너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왜 사는가 따위의 생각에 관심을 두는 것은 체력적,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야 가능한 것인데.. 그런 여유 자체가 없거나 또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닌가 하고요.
 
"우리"라는 무리로서 사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식되는 곳에서 self-boundary라는 개념이 잡혀있지 않고 self-governing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냥 어울렁 더울렁 자신의 작은 group들과 함께 휩쓸려서 살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 같고... 그 와중에 "우리" group이 아닌 다른 무리와의 차별성을 보이기 위한 방책으로 물질적 지표들이 가장 눈에 띄기 때문인지 물질주의가 발달한 것 같았고요. 하지만 또 뒤집어서 보면... 그렇기 때문에 또 지구 학교의 목적에 잘 부합되는 곳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제 자신의 높은 뜻을 세우는 것이 가닥 잡혔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당장 제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두 가지로 나뉜 장소와 그에 따른 기회들 중에 어떤 것이 지금 제게 더 필요한 것이고, 제가 원하는 것인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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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cerpt from a seeker's 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