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청소년 칼럼] 행복추구권, 행복하게 교육 받을 권리

namaste123 2009. 9. 24. 01:19


 



[청소년 칼럼] 행복추구권, 행복하게 교육 받을 권리


전소현(15세)

 


 

행복추구권, 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이 간절히 바라는 권리가 아닐까 합니다. 대부분 하루 종일 집과 학원, 학교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정말 상투적이라서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달리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생활하고 있으니까요. 아니면, 가방만 바꿔 메고 눈 뜨고 자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참 아이러니이지요. 어떤 나라에서는 일 초라도 갑갑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나라에서는 한 글자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피땀을 흘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행복한지, 답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교육 받을 권리가 있고, 동시에 교육 받을 의무가 있지요. 권리도, 의무도 너무 과하거나 부족해서는 안 되는데 이런 양극화 현상이 계속 되어,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물을 시간도 없으니까요.

 

 

지식e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영상을 보면 전자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1등을 지키기 위해,  1등을 이기기 위해 공부합니다. 수학이 좋고 과학이 즐거워서라는 대답은 하지 않습니다. 가족은 나의 성적만 밝히며, 가장 두려운 것은 성적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가장 큰 목표는 이번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고, 1등인 친구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적는 칸은 비워져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집안도 좋고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친구가 막상 장래 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에는 어정쩡하게 우물쭈물 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지요. 제 주위의 좋은 어른들, 멋진 친구들만 보아와서일까요. 성적이 나쁜 것은 제가 공부하는데 동기 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천천히 그것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라고 배웠는데, 막상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15살이나 되어서 막연히 ‘돈 잘 버는 직업’을 떠올리는 모습이 한심스럽고 불쌍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하고 싶은 거라곤 고리타분하게 돈 버는 것뿐인 삶이나 계획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지식e <한 권의 책>이라는 영상은 후자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깨달았습니다. 꿈이란 케냐의 빈민가에 사는 소년이 갖기에는 너무 큰 사치라는 것을” 

 

사미 기타우. 케냐 나이로비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폭력 조직에 들어갑니다. 도둑질과 마약 판매를 하다가 나중에는 팔기만 했던 마약을 복용하기에 이르고 결국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릅니다. 그는 신과 약속합니다. 자신을 이 위기에서 구해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그는 가난으로 굶주리고, 폭력으로 고통 받고, 마약으로 죽어가는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가 유학을 떠난 것은, 어린 시절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단 한 권의 책 때문이었고, 그것은 누군가가 버린 맨체스터 대학의 소개서였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저는, 제 친구 같은 부자도 아니고, 사미 기타우 같은 빈곤층도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아 부모님께서 매일 열심히 일하셔서 번 돈으로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고, 이렇게 책도 읽을 수 있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저도 특별히 공부를 잘해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승승장구해서 잘 살아보고 싶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려고 합니다. 우리들 중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도 항상 성적 - 고작 100 이하의 숫자와 퍼센테이지 주제에 제 두뇌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방진 놈 - 때문에 고민하지요. 일반적인 대한민국 학생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사미 기타우는 꿈이 사치인 빈민촌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빈민으로 자랐습니다. 그가 쓰레기 더미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줍지 않았더라면, 그는 영원히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대물림해야 했겠지요. 하지만 그는 꿈을 가졌습니다. 지옥 같은 삶에서도 잊지 않고 그 꿈을 위해 싸웠습니다.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영국과 6개월 간을 투쟁한 끝에 마침내 그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불행하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해냈습니다. 누구나 꿈을 갖고 있으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적인 내용은 가급적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진리니까요.

 

 

그런데 억울한 것은 꿈이 없어도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세태입니다. 부모님이 시키니까, 유망한 직업이니까 선택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하지만, 요즘에 그런 게 통용될 리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제가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그 반대입니다. 꿈을 갖고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을 하는데 20km를 목표로 정한 사람은 42.195km를 다 뛰지 못해도 18km 지점부터 설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km만 통과해도 기쁘고, 체력이 허락한다면 끝까지 뛰어 볼 용기도 생기겠지요. 그러나 지구 백 바퀴를 돌 수 있는 실력의 소유자라도 아무런 목표 없이 뛰어서 도착한다면 싱겁고 무미건조 하겠지요. 개미가 발바닥을 무는 느낌 정도일까요. 아무리 뛰어도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는 사람은 그야말로 무의미합니다. 반면, 결과는 작지만 목표가 있어 그것을 달성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에 사로 잡혀 황홀해 하겠지요. 꿈 없는 친구가 전교 1등을 해도 제가 공부할 맛이 나는 것은 제게는 목표가 있고, 지금은 그것을 향해 달리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지요. 답답한 교육정책에 맞서 교육청 앞에 가서 시위하고 저항하기 전에 우선은 교육을 받는 나의 태도부터 다시 생각해봅니다. 입시 지옥에서 시달리고 있어도, 올바른 교육정책에 목말라 해도, 꿈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의 행복추구권, 행복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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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디고잉 17호]행복추구권, 행복하게 교육 받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