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자료] 2000년대 출판시장에서 나타난 변화

namaste123 2010. 7. 16. 06:15

특집 ― 2000년대 출판계 결산 2



2000년대 출판시장에서 나타난 욕망의 변화:


"절대 고독의 개인 발견"





글쓴이/ 한​기​호



대학이나 신문사에서 ‘추방’ 당한 지식인 세력이 대거 유입된 1980년대 출판계에는 변혁이론의 창출과 보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1980년대는 이념(이데올로기)의 시대이자 역사의 시대이면서 논쟁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기본모순과 주요모순에 대해 치열하게 다퉜던 사회구성체논쟁을 비롯해 수많은 논쟁이 책과 잡지를 통해 이뤄졌으며,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주영의 『객주』, 이병주의 『지리산』,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등 대하역사소설을 읽으며 정치적 각성을 하던 시대였다.


또한 1980년대는 시의 시대인 동시에 저항의 시대였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삶을 억압받던 그 시대에 지식인들은 이념시나 민중시로 목청을 한껏 높였다. 하지만 분노로 뜨거워진 대중의 마음을 식혀준 것은 쉽게 읽히는 서정시였다. 대중은 서정윤의 『홀로서기』,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 김초혜의 『사랑굿』 등의 밀리언셀러 시집들을 읽으면서 힘겨운 시대를 이겨낼 힘을 얻기도 했다.


1990년대에 이 땅에서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은 ‘개인’이었다. 1989년 현실사회주의가 사실상 붕괴하자마자 책 제목에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가 바로 ‘나’였다. 『세계는 넓고 (내가) 할 일은 많다』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내 인생 내가 선택하며 산다』 등의 비소설은 ‘어떻게 남보다 잘 살 것인가’를 다뤄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을 자극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이문열),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물 위를 걷는 여자』(신달자) 등의 밀리언셀러 소설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주인공이 등장했다. 1992년부터 봇물처럼 쏟아진 ‘공격적 페미니즘’의 담론을 담은 소설들이 인기를 끌 무렵에는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감상적 에세이는 퇴조하고 특이한 이력을 가진 평범한 개인의 솔직한 고백담이 인기를 끌었다.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정식 출범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가 출시됐다. 충격적인 두 ‘사건’은 개인이나 국가 모두에게 새로운 질서의 확립을 요구했다. 이렇게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시대적 담론이 등장하면서 자기계발서인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컴퓨터 길라잡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등의 실용서가 출판시장을 강타했다. 이후 실용서의 도도한 흐름이 이어졌다.


서갑숙의 『나도 때론 프로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등장한 1999년까지 90년대 내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이념서적이 퇴조해서 생긴 공백은 경제서와 과학서, 실용서적, 아동서적 등으로 채워졌고,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기업 경영이나 미래 정보사회 진단서, 환경론 등으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전체적으로는 국가, 역사, 민족 등을 이야기하는 ‘큰 이야기’보다는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노래한 ‘작은 이야기’가 넘쳐났다.


1997년 IMF사태로 돈이 없으면 나라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개인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맸다. 실업자가 155만 명을 넘어서자 길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쳤고, 도서관에는 실직자가 몰려들었다. 실물경제가 바닥을 모르는 듯 추락하고, 고금리로 인한 돈 가뭄에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젊은 세대는 판타지나 멜로, 영상소설에 빠지기도 했으나 대다수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처럼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따뜻한 이야기’에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수많은 가치들을 포기하고 ‘우상파괴’를 즐기기 시작했다. 오체는 불만족이지만 인생은 대만족이라는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 히로타다 같은 기존의 상식을 파괴한 새로운 ‘영웅’에 열광하고,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구본형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낯선 곳에서의 아침』,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등이 제시하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사고와 행동에 쉽게 젖어들었다. 하지만 두 해 동안 밀리언셀러는 실종됐었다. 




2000년대의 변화


2000년대 출판시장을 주도한 것은 이른바 자기계발서였다. 2000년대는 매년 자기계발서 분야에서 밀리언셀러가 나오다시피 했다. 따라서 2000년대에 등장한 자기계발서의 흐름을 살펴보면 2000년대 대중의 욕망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알 수 있다.


2000년대 출판시장은 화려하게 시작됐다. 2000년에는 2년 동안 사라졌던 밀리언셀러가 모처럼 네 종이나 한꺼번에 등장했다. 컴퓨터게임에 중독된 어린이들을 책으로 돌려놓은 ‘해리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 300만 부), 영어공부의 패러다임을 뒤바꿔 놓은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 130만 부), 눈물겨운 부성애를 그린 『가시고기』(조창인, 105만 부), 돈과 부자라는 말을 공론화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 100만 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네 권의 공통점은 우리 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담론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나’ 아니면 가족에 대한 헌신만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대중의 관심사는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독자들은 리더reader에서 사용자user로, 다시 콜렉터collector로 변신했다. 


2001년에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비롯해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겅호』 『하이파이브』 등 핵심적 구호나 개념을 가진 이미지 동물로 생존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우화형 처세서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 책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를 먼저 감지하고 적응하여 행복을 찾으라고 속삭인다. 인간은 유일하게 주어진 환경마저 변혁할 수 있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우화들은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제시하지 않은 채 오로지 동물과 단순 비교하며 철저하게 환경에 순응할 것을 촉구했다. 사실상 노동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의 ‘음흉한 논리’가 배어 있는 책들이었다. 기업 경영자들은 이 책들을 대량 구매해 직원들에게 읽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개인은 열정을 갖고 2000년대 초반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현실의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벤처 열풍에다 로또 광풍이 불었으니 꿈이라도 꿀 수 있었다. 남보다 빨리 변화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의 속삭임은 없는 능력도 저절로 생길 것 같은 자신감을 북돋워주웠다. 디지털 경제는 기술진보로 생산비용을 줄이며 제품의 가격을 낮췄다. 글로벌화와 시장개방은 값싼 상품과 인력의 유입을 도왔다. 때마침 사상 초유의 저금리가 적용되자 개인은 대출을 늘려서라도 뭔가를 해보려는 욕망의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2002년에는 출판 역사상 최대의 이벤트라 할 수 있는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가 출판계를 강타했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들은 최소 수십 만 부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느낌표 브랜드’의 책들은 부모세대들에게는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고 자식 세대들에게는 부모가 살았던 어려운 시절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느낌표 브랜드’를 제외하고 밀리언셀러가 된 유일한 책은 틱낫한의 『화』다. 관념이 아닌 일상을 중시한 『화』는 정치, 경제, 환경, 고용, 연금, 금융, 신기술 등에 대한 불안과 빈부격차, 테러의 위협 등으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대중을 위무했다.


2003년의 ‘카드대란’은 벤처열풍에 흥분했던 ‘열정’을 한순간에 ‘냉정’으로 바꿔놓았다. 돌려 막던 카드는 부메랑이 되어 인생설계를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나 『2막』을 통해서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절감한 개인은 『한국의 부자들』 『나의 꿈 10억 만들기』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 등 ‘후반생’을 준비하라는 책에 빠져들었다. ‘아침형 인간’은 힘겨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대중에게 던져준 새로운 삶의 철학이었고, ‘10억’은 고달픈 사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의 대변이었다.


2004년에 개인은 자기 상상력을 추구했다. 인간의 상상력을 ‘강제’하는 『다 빈치 코드』를 비롯한 팩션과 인간의 희망(꿈)을 향한 기나긴 상상의 여정을 담고 있는 『연금술사』 등의 소설적 상상력에 잠시 몸을 의탁했다. 개인은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주도자가 될 수 있었다. ‘외길’을 걷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강속구가 아니라 변화구이며, 또 정석의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누구나 아는 정석으로 달려들어서는 성공할 수 없는 시대에 그만큼 상상력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런 교훈을 깨달은 개인은 2005년에 하고 싶은 일을 즐기되 자신만이 지닌 능력을 밖으로 표출하는 임파워먼트를 지향했다. 그런 성향의 개인이 추구한 것은 어젠다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같은 평범한 개인이 실천해야만 하는 매뉴얼에 감동하고 ‘10년 후’의 미래담론이나 동양고전을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소개한 『강의』(돌베개)를 비롯한 ‘요다형 책’에 심취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드디어 ‘성공’이라는 담론을 포기하고 ‘행복’으로 코드를 바꿨다. ‘행복’은 ‘성공’의 대체물이다. 2000년대 벽두부터 개인은 변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성공을 해보려 안달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개인의 삶을 옥죄는 강력한 힘은 국가 차원에서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승자독식 구조에서 1등은 승승장구할 수 있지만, 2등 이하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아무리 일을 해도 풍요로울 수 없는 신빈곤층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에서, 개인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공을 포기하고, 부족하더라도 자기만족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세 번의 자살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난 여주인공은 남자 사형수를 면회하러 가는 세 시간, 목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의 ‘제한’된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여긴다. 이렇듯 개인은 자신의 꿈을 최대한 줄여서라도 행복감을 느끼면서 애써 희망을 찾고자 했다.


IMF 구제금융 당시 무릎을 꿇고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한국정부에게 IMF가 융자의 조건으로 내건 것은 금융의 외자 규제 철폐, 공공 투자 삭감, 은행 정리, 노동시장의 유연화 촉진 등이었다. 김대중 정권은 1998년 2월에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제를 통과시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7월 1일부터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너무 늘어 이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시정과 남용 방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사람은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항이 오히려 노동자를 일자리에서 추방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한국사회의 노동시장은 1997년 이후 10년간 전국민의 임시직화가 일관되게 추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업들은 명예퇴직이나 일방적 해고의 상시화시스템을 가동했으며 젊은 사람은 안정적 직장으로 진입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만혼, 비혼이 늘어나고 가족 해체 또한 일관되게 진행됐다. 이렇게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대중은 세중細衆(또는 분중分衆)의 단계를 거쳐 개중個衆(개인+대중)이 되었다.


2007년에 개중은 일과 개인생활에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성향을 띤 ‘현명한 삶’을 추구했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와 논리가 생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돈과 성공, 건강이라는 생활 관련 장르부터 철학과 고전 등 문학 장르에 이르기까지 기본을 알려주는 기초적 책 찾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말이 기초이지 개중은 그것을 만병통치약(솔루션)으로 여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부자가 된다는 『시크릿』의 한마디 가르침에 정서적 위안을 얻었고, 『이기는 습관』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등의 자기계발서가 속삭이는 구체적인 매뉴얼에 귀를 기울였다. 


2008년 가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개인의 삶을 더욱 처절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인생설계를 세우기는커녕 생존하기도 버거워진 사람들은 살아남은 자의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자기치유self-healing’ 열풍에 빠져들었다. 응원 받고 위로받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가족이 얼마나 단절하며 살았는가를 말해주는 『엄마를 부탁해』가 나타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절된 것은 가족뿐이 아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지역, 세대, 언론, 학교 등 어디서나 말이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말만 넘쳤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09년에 개인은 소통을 꿈꾸었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가족 단위의 소통을 꿈꾸었다면 『도가니』(공지영)를 통해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공권력과의 소통을 꿈꾸었다. 갈수록 폭과 깊이를 넓혀가는 심리학서적을 통해 자신과 타자와의 소통을 추구했으며, 『여보, 나좀 도와줘』 『성공과 좌절』 『진보의 미래』 등을 통해서는 노무현이 추구했던 ‘진실’과 소통하고자 했다. 또 타자와의 소통이야말로 자신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개중은 읽고, 쓰고, 말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들을 열렬히 찾았다.


세상이 절박할수록 개인은 문학 서사를 즐겼다. 2009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2009년 도매상의 베스트셀러 50위권에는 소설과 에세이가 2/3를 차지했다. 2008년만 해도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활개를 치던 자기계발서류는 불과 8종에 불과할 정도로 완전히 추락했다(물론 온갖 변칙적인 사재기가 난무하는 온라인서점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소설이 베스트셀러 상단을 휩쓸었지만, 소설 시장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다. 국내 소설은 신경숙, 공지영, 김진명, 황석영, 김훈 등 역시나 ‘그 나물에 그 밥’인 인기작가의 작품이 휩쓸었으며, 외국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 등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일색이었다. 에세이로는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 이외수의 『청춘불패』,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 등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자기치유 열풍에 값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2009년의 개중은 소통을 꿈꾸었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음을 확인했다. 공권력은 여전히 법과 질서를 외쳐댔지만 최소한의 신뢰도 보여주지 않았다. 상위 1%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권력은 최소한의 생존권을 외치던 사람들을 짓밟은 ‘용산 사건’의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오히려 그들은 언론장악을 통해 일방적인 목소리만을 유포하고자 하는 욕망을 발산했다. 세상과의 소통에 힘겨움을 느낀 개중은 현실의 삶에 대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상 파산한 자본주의가 제안하는 시장근본주의의 대안과 한없이 추락하기만 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대안을 동시에 추구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세 가지 뉴스


이렇게 2000년대의 첫 10년은 절대 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이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한 해에 석·박사가 8만 명 이상 배출되는 고학력 사회다. 하지만 시장근본주의가 점령한 대학에는 효율만이 강조되며,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 연봉 990만 원 미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7만 명(전체 비정규직은 13만 5,000명)이나 되지만 정규직 교수는 6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차별화가 심각해졌다. 2년만 일하면 정규직으로 바꿔준다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악용되면서 2년이 되기 전에 강단에서 떨려나는 사람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 강의의 3분의 2는 자신의 몸도 가누기 어려운 비정규직 강사들이 해결하고 있다. 이런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비전을 찾아낼 리가 없다. 철 지난 매뉴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교육노동자, 즉 프로페서에 프롤레타리아를 합친 존재인 프로페서리아트들은 학생 모집부터 졸업생 취업까지 학생들을 관리하기에 급급하다.


그들은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목청을 높이지만 자신들이 선발한 학생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무너지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대학졸업자의 대부분이 임시직 노동자로 전락해버렸다. ‘88만 원 세대’가 ‘77만 원 세대’로 전락하는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개인은 결코 절대 고독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출판시장에서 ‘교양’과 ‘청춘’이 회복될 수도 없다.  

  


나는 작년 연말 <한겨레21>에서 ‘사소해서 더 가치 있는’ 출판뉴스 세 가지를 뽑아달라는 요청에 다음의 세 가지 뉴스를 제시했다.


- 예스24, 1조원 매출 목표 온라인서점 매출 1위인 예스24의 2008년 매출액은 2,996억 원으로 2007년의 2,485억 원보다 20.56% 성장했다. 올해(2009년)는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졌지만 이 비율로만 매출이 성장해도 2015년에는 1조 2,000억 원이 넘는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예스24는 자신들이 5년 안에 1조 원 매출을 기록할 수 있으나, 그것을 7년으로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과도한 집중에 따른 폐해를 스스로 의식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 웅진지식하우스 620억 원 매출 국내 단행본 출판사 중 매출액 선두를 달리는 웅진지식하우스가 올해 6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웅진지식하우스의 지난 3년간 성장 속도를 볼 때 2011년에는 1,000억 원의 매출을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1,000억 원은 1만 원 정가의 책 1,000만 권이다. 10개 출판사가 도매상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재의 구조가 머지않아 5개 출판사로 줄어들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있다.


-『로쟈의 인문학서재』,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상 수상 한 온라인서점의 서재 블로그에 연재된 글 가운데 의미 있는 글들만 골라 펴낸 이 책이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저술상을 받았다. 이것은 지식체계가 완전히 잡힌 다음 교과서적으로 정리해 문자로 기록하는 ‘황혼의 글쓰기’보다 정보가 광속으로 날아다녀 ‘모든 것이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현실에서 눈앞에 주어진 정보들을 연결하여 문자로 기록하는 ‘대낮의 글쓰기’가 중요해졌음을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뉴스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 출판유통과 생산의 양극화, 텍스트 생산의 구조가 달라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뉴스다. 우리 출판은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출판시장에는 ‘절대 고독의 개인 발견’뿐만 아니라 소수 인기저자로 집중되는 소설시장과 시의 극심한 침체, 온라인서점의 유통 독과점과 오프라인서점의 몰락, 임프린트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한 출판시장의 독과점, 글쓰기 방식의 변화와 새로운 필자군의 등장, 1인 출판의 정체와 아웃소싱 시스템의 진화, 전자책의 가능성 발견과 수익모델의 부재, 외국 빅타이틀의 과도한 경쟁, 크로스미디어의 확산 등이 진행됐다. <기획회의> 신년호 특집은 바로 그런 흐름을 짚어봄으로써 2010년대를 기회로 연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기획회의> 263호 2010.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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