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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최첨단의 삶을 살아가는 세대, '마흔 즈음'의 여성

namaste123 2010. 7. 16. 07:07

한국 출판계 동향 (36)






글쓴이/ 한​기​호



한 사회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386세대'처럼 논의의 준거가 되는 세대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그 세대로 '마흔 즈음'의 여성을 꼽았다. 21세기가 단지 '여성의 시대'여서만은 아니다. 문화시장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은 바로 그들에게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뮤지컬, 음악회, 공연 등 고급한 문화의 열렬한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소비시장에서 초기 구매에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시장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 전모를 내가 출판의 트렌드를 읽는 방식으로 설명해보겠다.

 

내가 출판의 트렌드를 읽는 방식은 이렇다. 나는 1년에 서너 차례 일본을 다녀온다. 지난 10년 내내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갈 때마다 출판 관련 책도 많이 사왔다. 2000년대 초반에는 동아시아 공동출판을 진행한 덕에 더 열심히 사고 읽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에 가지 않고 일본 출판전문지를 꾸준히 읽는 것만으로도 그 흐름을 대강 짐작한다. 일종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 셈이다. 일본 출판의 흐름을 꾸준히 읽다 보니 그 뒤를 적당히 뒤좇는 우리 출판의 흐름을 예상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일본과 우리의 간극이 급격하게 좁혀지고 있다. 이제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달리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2008년 일본 최고의 히트어 '아라포'


자, 이제 '마흔 즈음'의 여성을 대상으로 살펴보자. 일본은 그들을 '아라포'라고 부른다. 아라포는 2008년 일본에서 가장 히트한 신조어로, '어라운드around 40'을 일본식으로 만든 것이다. 작년 4월 11일부터 TBS계열에서 방영한 <Around 40-주문이 많은 여자들>(아마미 유키 주연)은 40세 안팎 여성들의 일과 결혼, 출산을 테마로 한 드라마인데,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바람에 아라포는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라포가 과연 누구인지부터 알아보자. 신조어 전문가인 모리 히로시가 정리한 글에 따르면, 2008년 나이를 기준으로 반올림을 했을 때 40대가 되는 여성으로 1964~197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남녀고용기회균등법 하에서 사회에 진출했고, 일과 결혼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기轉機를 늦춤과 동시에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아라포는 '아라사'라는 기존 개념에서 파생한 단어다. 아라사는 'around 30'을 축약한 단어로 '30세 전후의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5년 말에 창간한 여성지 <지젤>에서 처음 사용했고, 주로 의류업계로 퍼져나갔다. 이 세대 여성은 90년대 중반에 고갸루 문화를 체험하였으며 독특한 유행을 발신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의류업계에서는 단카이 주니어(현재 34~38세)를 잇는 세대 구분의 개념으로 '아라사'라는 말을 사용했다.

 

현재 40세인 여성은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시행 당시인 1986년에 18세였다. 각 기업에서 종합직 제도와 육아휴업제도 등을 도입했고 이 때문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버블 경기도 뒷받침해주었다. 해마다 내용이 업그레이드 되는 『현대용어의 기초지식』 1991년판에 '바리캬리(바쁘게 일하는 캐리어 여성)'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 때문인지 아라포 세대 중에 '서둘러서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초혼연령은 1990년에 26.9세였지만, 2005년에는 32.0세까지 상승했다.

 

아라포 세대가 결혼 판단을 보류하는 요인의 하나로,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고령출산이 이전만큼 위험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꼽는다. 앞의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초산 평균연령은 1990년에 27.0세, 2005년에는 29.1세까지 높아졌다. 또한 35~44세 여성이 낳은 자녀의 수는 1990년에는 10여만 명이었으나 2005년에는 17여만 명까지 증가했다.

 



여성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최첨단 세대' 아라포


아라포 세대는 독자적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와시타 구미코가 제창한 '오히토리사마(취미와 여가를 즐기는 일본 싱글여성)'가 대표적인데, 이는 자아를 확립한 성인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시타는 '오히토리사마'의 행동 특성으로 혼자 레스토랑에 가거나 여행을 즐기는 스타일 등을 제시했다. 의존심을 없애고 자아를 확립함으로써 역으로 타인과 좋은 공존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아라포 세대는 고급 물건을 살 때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이 정도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포상이라고 생각하는 포상소비 같은 '오히토리사마'적인 새로운 소비습관을 정착시켰다.

 

이러한 시대배경에서 아라포 세대가 일, 결혼, 출산, 취미 등 인생의 선택지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해왔음을 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아라포 세대는 일과 결혼이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최초의 세대인 셈이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대신 막연한 고민 또한 떠안게 되었다.

우선 이들은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유리천장이란 관리직 여성이 그 이상의 요직으로 올라갈 수 없는, 승진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말한다. 제도상으로는 전혀 제제가 없지만 운용상 차별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유리천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또한 아라포 세대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 많다. 예를 들어 미혼여성은 출산 제한 연령에 쫓긴다. 결혼이나 출산을 결심하기 위해 남겨진 시간이 적다는 얘기다. 막상 출산을 결심했다 해도 주위에 같은 세대의 엄마들이 없다는 것도 고민거리가 된다. 한편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사람은 노후 생활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두 고민의 공통점은 '여성의 인생에서 전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전기가 10년 정도 늦어지고 있다.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삶의 방식을 가진 선배가 적기 때문에, 역할모델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다음 세대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데 특히 커리어우먼의 경우 이러한 사실이 중압감으로 다가오기 쉽다.

 

적극적으로 일을 하려는 여성을 응원한다는 의도에서 탄생한, 아이가 없는 30대 미혼 여성을 뜻하는 조어로 2004년에 유행했던 '마케이누'는 아라포 세대에 속하는 미혼여성의 모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싸움에 진 개라는 뜻의 마케이누는 35세 미혼여성이었던 사카이 준코가 자신의 책 『마케이누의 절규』(한국어판 제목 '결혼의 재발견')에서 처음 사용한 뒤 널리 알려졌다. 어쨌든 전 세대가 안고 있던 문제가 현재까지 넘어온 셈이다. 아라포는 여성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최첨단 세대'인 한편, 새로운 삶의 방식에서 버둥거리는 '고뇌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열렬한 연애를 즐기는 이들은 현재 일본에서 경제적으로 소비욕구가 가장 왕성한 세대다. 아라포는 저축보다는 쇼핑과 여행, 자기투자라는 명목으로 자신이 모은 돈이나 남편의 돈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저축한 것이 없는 아라포의 노후가 화두가 되고 있다. 우에노 지쓰코의 『혼자 맞이하는 노후』(한국어판 제목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10개월 만에 75만 부나 팔려나간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심각한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 접어들면서 아라포도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아라포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도 마음만은 아라포 그대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한 전문가의 분석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사거나 밀접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거나, 40대에도 연애와 결혼, 출산에 뛰어들거나….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큰 에너지를 쏟는 마음의 여유는 효율을 중시하는 세상에서는 매우 귀중한 일이다. 쓸데없는 것을 배제한 사회는 살벌한 풍경이 된다. 아라포는 사회의 원기元氣의 지표이다. 아라포가 원기를 잃는 시대는 일본사회도 원기를 잃을 시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IMF구제금융 직전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어질 즈음에 세계에서 축복받은 세 부류의 여성이 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회자됐다. 신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물려받은 러시아 여성, 남녀고용기회균등법으로 직장에서 활기차게 일하면서 버블경기에 따른 엔고에 힘입어 세계를 여행하며 명품소비를 일삼던 일본의 오피스레이디, 경제활동은 하지 않으면서 명품소비를 일삼는 서울 강남의 부잣집 전업주부들이 그들이다. 이 중 일본의 오피스레이디가 바로 아라포이다. 올해 1월 중순 일본 서점가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잡지 트리오 <Precious> <marisol> <STORY>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물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단행본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한국에서 '마흔 즈음'은 어떤 삶을 살아왔나


그렇다면 한국에서 '마흔 즈음'의 여성은 어떨까? 치매에 걸린 엄마의 실종을 다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벌써 40만 부를 제작했다. 아마도 올해 안에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을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데 기여한 초기의 열혈 독자는 자신들이 어머니가 되어서야 진정한 어머니의 존재를 이해하게 된 '마흔 즈음'의 여성들이다. 그 중 상당수는 '원싱'이든 '돌싱'이든 어쨌든 싱글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자면 『엄마를 부탁해』의 지금 독자층은 셋 중의 둘은 20~30대다.

 

올해 마흔은 마케팅에서 '58년 개띠'에 버금간다는 '70년 개띠'다. 그들은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될 때 물질적 혜택을 누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했으나 그리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교복자율화로 평생 단 한 번도 교복을 입어보지 않았고, 따라서 다른 세대보다 자기표현이 확실하다. '나이키' 같은 브랜드상품에 대한 인지도가 남달랐으며, 이후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86아시안게임과 87년 6월항쟁, 88올림픽의 빛나는 경험을 했다. 또 하이틴 로맨스에 빠져 꿈이나 환상을 키우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의 이런 '성공적' 경험은 그들을 매우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바꿔 놓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해외여행 완전자유화조치로 관심사를 전세계로 확대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배낭여행을 즐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들 세대다.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늘 억압받던 시절의 후일담에 머문 이전 세대와 같은 고민을 할 겨를이 없었다.

 

사회에 진출할 무렵인 1990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레닌 동상이 철거되는 등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자본주의 진영의 자신감이 사상 억압을 완전히 풀었다. 이때부터 이들의 관심은 국가나 민족 등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구라'는 가고 '수다'의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또 서구식 개인주의 정서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첫 체험이 '공격적 페미니즘' 세례였다.

 

작가의 이혼 경력이 연상되는 공지영의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푸른숲), 여성에게 향하는 일상적 학대가 자연스럽게 은폐되고 이해되는 남성중심의 사회를 공격하는 여성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인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살림), "나는 더 이상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려드릴 수가 없습니다"라는 광고카피를 들고 나온 『혼자 눈 뜨는 아침』(이경자) 등의 소설은 전통적인 가족중심적 사고를 뒤흔들어놓았다.

 

1995년에는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살림)이나 『남자의 향기』(하병무, 밝은세상), 『하얀 기억 속의 너』(김상옥, 창해) 등 한없이 사랑받기만 하는 여자들이 주인공인 소설들이 주로 팔려나갔다. 비슷한 코드의 <편지> <동감> <애인> 같은 영화들이 줄줄이 인기를 끈 것도, 김자옥이 <공주는 외로워>라는 노래를 불러 한때 가수로서도 인기가도를 달렸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때 그들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포기하고 급격하게 자기애로 무장해갔다.

 



소비시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마흔 즈음'의 여성들


IMF구제금융이라는 위기 국면에서 그들은 남자 고르기에 열중한다. 양귀자의 『모순』(살림)의 주인공인 25세 안진진은 '현실'과 '몽상'을 상징하는 두 남성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까를 고민한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은희경, 문학동네)의 30대 중반 이혼녀인 여주인공 진희는 뱃속의 아기아빠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동시에 여러 명의 남자와 복잡한 사랑을 나누면서 애인이 적어도 세 명은 되어야 안심이라고 주장한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전경린, 문학동네)은 남편의 외도 때문에 유폐의 나날을 보내던 여주인공 미흔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의 섹스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아주 특별한 날을 다룬다.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출판시장에서 남자와 여자의 처지와 역할은 뒤바뀐다. '잘 나가던' 남자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나도 힘들다고 외치거나 후반생을 걱정하고 살아간 반면 여자들은 적극적으로 활동무대를 넓혀갔다. 2000년 밀리언셀러에 오른 『가시고기』(조창인, 밝은세상)나 『국화꽃 향기』(김하인, 생각의나무)의 남자주인공은 아이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과거 여성의 역할을 떠맡은 반면, 여자주인공은 일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유학을 가는 등 매우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로 거듭났다. 오만한 남자들은 온데간데없고 고개 숙인 남자들이 넘쳐난 반면 여성들은 정말로 잘 나갔다. 그렇다고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가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자 이 땅의 여성들은 재테크와 자기계발에도 열을 올리며 '성공'을 꿈꾸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다우)에서 '자기경영'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는 이혼녀 백지연은 『자기설득파워』(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당당하게 '최고의 멘토는 바로 나'라고 역설했다. 이런 주장은 여성의 신념으로 무장되기 시작했다. 그후 여성들은 일과 결혼(자식)이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쇼핑과 여행 등의 취미활동과 자기투자 등으로 선택지를 넓혀갔다. 남녀관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에 출간된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민음사, 영화는 2002년)에서는 여주인공이 남편과 애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죄책감 없이 조금 분주하게' 살았다면, 2006년에 출간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문이당, 영화는 2008년)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당당하게'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발표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의지 하나로 남의 도움을 받아 역경을 개척하는 <대장금>의 '비주류' 장금이가 아니라 이미 자신이 갖춘 기반과 주변 인물과 환경을 M&A하여 거대한 꿈을 실현해나가는 진취적 여성인 '주류' <천추태후>로 바뀐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올해 소비시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세대는 바로 '마흔 즈음'의 여성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돈이든, 남편의 돈이든 구매력을 갖고 있다. 일본처럼 우리나라 역시 마흔 즈음의 여성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앞서서 선도하는 '최첨단 세대'인 것이다.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비)가 선풍적 인기를 끌 당시 나는 여성에게 '서른'이라는 나이가 얼마나 감정적 폭발력을 갖는가를 절감했다. 하지만 그 나이는 정확하게 10년 뒤로 늦춰졌다. 이제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즈음해 미래에 대한 불안 해소, 자기 확신, 위로대상의 선택 같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그때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상품들이 주목받을 확률이 높다.

 

출판시장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10대는 줄 세우기 교육 탓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2008년 아동서적 매출이 2007년에 비해 30% 정도 감소했다. 올해도 그런 흐름은 이어질 것이다. 취업 혹한기에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을 앞둔 20대는 여전히 취업 5종 세트에 열중할 것이나 '88만원 세대'가 상징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의 한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에 비해 구매력이 있는 40대 여성들은 자신을 위해서 가치 있는 투자라는 판단이 들면 아낌없이 돈을 쓸 것이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서성이는 이들도 그들이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나서는 이들도 그들이다. 그들의 절반쯤은 싱글이거나 정서적으로는 이미 싱글이나 마찬가지인 싱글예비자다. 최상의 목표 중심에 늘 자신을 놓을 줄 아는 그들은 살벌한 경제위기 국면에서도 일종의 '와인메이트'(우에노 지쓰코는 『혼자 맞이하는 노후』에서 중장년 여성들이 베드메이트보다 '테이블메이트'를 선호한다고 했는데 나는 테이블메이트보다 한 단계 위인 와인메이트란 단어를 만들어봤다)처럼 위기의 순간마다 결정적 조언을 해줄 책들을 열렬히 찾아 읽을 것이다. 결정적 선택을 해야 할 때 술 한잔 같이하며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친구 같은 책 말이다. 이들이 초기에 시장성을 키워놓은 상품들은 곧바로 30대나 50대로 확산되어갈 것이다.

 

이들 중 자식을 가진 이들도 주목 대상이긴 마찬가지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기도 하는 그들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식이다. 그런데 그들의 자식들은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고 있으며,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각종 교육문제로 엄청난 고통을 받아왔다. 소자녀화, 맞벌이, 핵가족 등으로 자식들은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어 끝없이 방황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식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별로 없다. 따라서 자식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80년대 말 학번 세대들은 선배세대인 386세대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그들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인문사회서적을 탐독하기도 한다. 아이를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여해본 경험도 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사서 먼저 읽은 다음 아이에게 권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김려령의 『완득이』(창비) 같은 '영어덜트' 출판이 올해 활발할 것이라고 믿는다.

 



추신 ― 이 글을 출판계의 70년생 여성편집자 네 사람에게 읽혀보았다. 글을 읽은 사람 중 두 사람이 KBS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한번 보라고 했다. 그래서 설 연휴 때 8회분을 모두 보았다. 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를 왜 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들 네 사람은 두 사람의 돌싱을 포함해 모두 싱글이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자의식이 무척 강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일전을 불사하기도 한다.

 

마흔 즈음의 세대들은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척 외롭다. 주위에서는 골드미스라고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386세대처럼 일을 주도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모아놓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연하의 꽃미남들에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것이다.

 

이 추신을 쓰고 있는데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쌤앤파커스)가 도착했다. 화보집이 아니라 그야말로 그들의 '꿈과 열정의 메시지'를 담은 자전적 이야기였다. 10대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30대 여성들까지 이 책에 열광한다고 한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이나 분야에 열광하는 팬덤 문화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10대가 아니라 30대와 마흔 즈음의 여성들이 이 책을 구입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들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열광하는 것과 맥이 닿아있다. 이런 현상을 통해 앞으로 그들의 열정을 자극하거나 '외로움'을 달래주는 문화상품이 상종가를 칠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기획회의> 241호. 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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