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스크랩] 아들의 겨울...좌충우돌 `양식조리사 시험대비반` 적응기...

namaste123 2010. 3. 23. 00:14

이번 겨울방학.. 아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요리학원에 다녔다.

월,수,금 3일은 '양식 조리사 시험대비반'으로,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취미요리반'에 등록하여

매일 아침 8시 반이면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6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 다시 한 번 5호선으로 갈아타고 발산동에 있는 학원에 간다.

목적지까지 혼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혼자서 가는 연습을 작년부터 해온 결과로

나와 함께 다닐 때도 완벽한 가이드 역할을 할 정도로 잘 갈아타고 다닌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점심값을 챙겨주며 나누는 모자의 대화..

'오늘 뭐 먹을거니?' - 엄마..

'아직 생각 안 했어요. 나중에 보고 결정할게요.' - 아들..

불과 몇달 전에는 모든 일의 과정을 미리 결정하고 계획한 다음,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받아들일 때까지 무척 힘들어 하며

'엄마, 모든 계획은 변할 수 있는 거지요? 받아들일 게요..씩씩'...하던 아이였다.

 신데렐라 새어머니 같은 엄마의 눈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점심을 사먹는 일이

그에게는 얼마나 신니는 도전이고 새로운 기쁨일까.

 

걱정스럽고 미숙해 보일지라도 아이에게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기회를 주어

시행착오를 통해 세상을 익혀가는 것이 '홀로 서기'의 기틀을 마련하는 방법이라 본다.

하지만 아이가 내 시야를 떠나는 순간부터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어미의 속은 시커멓게 타고, 온신경은 아이의 행보에 쏠려 있다.

도착하는 곳마다 전화를 하라고 교육에, 교육을 거듭해 시켰건만 가끔씩 홀딱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일일이 시간을 계산해 가며 내가 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여서,

아들이 전화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도를 닦고 있다.

 

2 개월 남짓한 겨울방학과 연이은 봄방학 동안

아들은 갖가지 실수와 해프닝으로 채색된 시간을 보냈다.

지하철 환승을 하며 5 호선 열차에 자신이 만든 요리가 든 가방을 두고 내릴 경우도 있었고'

(환승하고 나서 발견을 하곤 내게 바로 전화를 했다. 그리 당황한 기색 없이 '죄송합니다'를 거듭 반복하며..

예전처럼 충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아..아까워 죽겠다..에휴'를 되뇌었다.

그래도 같이 들고 갔던 우산은 챙겨온 아들...아침에 집을 나설 때, 우산을 챙기란 말을 너무 강조한 탓에

보따리는 잊고 우산만 챙겨온 걸까..ㅎㅎ)

분식집에서 치돈(치즈돈까스)을 먹고 나서 또 순두부 찌개를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거의 한끼 식사에 육박하는 간식을 먹고 온 날도 있었다.

(그날..사실, 나는 무척 절망했다.

도데체 아들의 머릿속은 무슨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기에, 배가 터질 만큼 부를 텐데 저렇게 꾸역꾸역 먹을 수 있었을까...

혹시라도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인 '렙틴' 분비에 문제가 있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적절하게 돈 쓰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애를 썼는데

자신의 점심값 안에서 적절하게 사먹는 일 하나 제대로 못할까..

이런 식으로 아이가 보호자립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따위의 사념들로 머리가 터질 듯했다.)

 

졸다가 응암역까지 가서 다시 돌아온 것은 사건 축에 들지도 않았다,

에피소드의 압권은 '점심을 3인분 먹은 날'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아침에 딸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주는 길에 일찍 나서서 상윤이를 먼저 요리학원에 내려주고

모처럼 수업을 마칠 때 내가 데리러 간다고 했다.

마치는 시각에 요리학원 건물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30 분이 지나도 안 나오기에 전화를 했더니

세상에나!! 집에 갔다는 것 아닌가..

바로 상윤이에게 전화를 해보니 전화기도 꺼져있고..

차를 달려 집으로 왔다.

오늘 길에 혹시나 해서 동네의 단골 분식집 언니께 전화해 아들이 지나가거나 들르면 내게 연락을 꼭 해달라고 부탁하고..

집에 돌아와서... 앉지도 못 하고 서성거리고 있는데 분식집에서 아들이 전화를 했다.

반갑기도 하고 화도 나서 '너는 엄마와 학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니? 빨리 와!!!'라고 말한 나...

두시 반에 전화를 한 아들이 세시 반이 되어도 안 온다...

 

분식집에서는 상윤이가 아무 것도 안 먹고 그냥 갔다 한다.

전날 점심을 삼인분 먹은 벌로 그날엔 배고픈 것 참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으라며 돈도 주지 않았는데..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긴장을 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내게

한 시간이 훨씬 지나 요리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상윤이 여기 왔는데요..'

........................................................

 

'선생님, 상윤이에게 만원만 빌려주셔서 점심 먹으면서 기다리게 해주세요, 지금 갈게요..'

 

무슨 정신으로 차를 몰았을까..

안도감, 실망, 막막함, 분노...뒤죽박죽된 감정을 안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아..'대박' 한 가지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

늑장 부리다가 아침도 변변이 먹지 못 한 아들이 '냉모밀'을 시켜 먹은 것이다.

점심 때는 가능하면 밥(!!)을 먹으라고 평소에 신신당부를 했건만,

3시 반이 다 되도록 굶다시피한 녀석이 차디 찬 모밀국수로 가뜩이나 언 속을 채우다니...

저렇게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모를까...

안타깝고, 불쌍하고, 또 한심해서 아이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생강차를 앞에 놓고 아이와 마주 앉아 그날의 사건을 정리했다.

내 잘못도 있었다..

'빨리 와'라고 말하면서 어디로 오라는 얘기를 안 한 것이다.

상윤이는 아침에 한 약속을 떠올리고 <<빨리!!>> 처음의 약속장소인 요리학원으로 간 것이다,

집을 코 앞에 두고...!!!!

 

자폐인의 특성을 잠시 잊어버린 나..

그들은 글이나 말의 이면에 숨은 뜻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융통성도 부족해서 비자폐인들처럼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기도 힘들다.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아들과 17년을 함께 한 어미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를 위로한 후..그날의 일기를 쓰게 했다.

아침부터 있었던 일들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고 그가 잘 못 대처한 부분을 찾아내어

일일이 이해시키고 대안을 찾아 가르치고 반복해 외우게 했다.

 말보다 글로 이해하는 것이 자폐인들에게 훨씬 효과적이라 나는 아들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글로 써보게 해서 풀어나가는 방법을 자주 쓴다.

 

정말...멀고 힘들다..

 내 아들이 홀로 사회 안에서 큰 무리없이 살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길...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자녀를 둔 세상 모든 어머니와 부모님들이 한결같이 겪는 고통이고 시련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부모 혼자서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사회와 학교가 연계해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특수교육'의 화두이자 목표는 '사회로의 전환'이다.

지금은 제도적인 뒷받침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자녀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장애인 취업이 권장되고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꺼리는 추세이다.

하지만 고용주나 기업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장애 특성에 맞게 교육과 훈련을 시켜 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구해주는 일이 선행되지 않고

학교에서 적극적인 사회전환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여건에서

우리의 장애를 가진 자녀들은 최저임금이나 때로는 그 이하의 급여와 대우를 받고

열악한 직업환경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취업을 하는 장애인의 비율은 극히 낮기만 하다.

 

벌써 고등학교 2 학년이 된 아들...

아침 6시면 일어나 학교 갈 준비에 바쁘다.

'오늘은 또 학교에서 어떻게 지낼까'...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아이를 배웅하며

'그래도 가방 지고 학교 갈 때는 행복한 줄 알어~'하던 스무 살 훌쩍 넘긴 자폐청년의 모친 말씀이 떠오른다.

 

'아직 2년이나 남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들의 '홀로서기'를 위해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힌다.

아...군대도 면제 받았으니, 2년 더 추가되는 군... *^_^*

그래...또 한 발짝씩 또박또박 걸어가자꾸나, 네가 제대로 대접 받는 직업을 가질 그 날까지....

 

 

 

 

이곳이 상윤이의 단골 식당이다.

요리학원에 등록한 후 몇 번 함께 가서 주인아주머니와 안면을 튼 사이라 큰 어려움은 없을 거 같았는데,

이곳에서 점심을 이 인분을 시켜먹은 것이다. 걱정스러워 하는 아주머니께 '너무 배가 고프다'며 동정심을 유발한 아들..

공기밥 한 공기 추가 시켜 밥은 세 그릇을 먹은 것이다..더구나 돈은 5000원 밖에 없었고...

다음날 찾아가서 외상값을 갚고 . 아들에게 1인 분만 주라고..다시 한 번 신신당부를 했다.

 

                                                                요리학원 '양식 조리사반'에 등록한 첫날..

 

실질적인 진로 선택을 한 고등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하나같이 앞치마를 안 입고 있어서 상윤이도 입기를 꺼려했다.

사춘기 아이들이라..존중해줘야지.. ^^*

 

 

 

                                                                         그래도 완전히 복장불량이다..

 

 

 

                                                                                            실습 수업준비

 

 

 

 

 

 

                                                                      막상 실습을 시작하니 도전정신이 넘친다.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는 '이쁜 선생님'..올해 초등학교 학부모의 반열에 오르셨다.

 

 

                                           눈이 나빠서인지  자꾸 고개를 지나치게 수그리는 아들..

 

 

이날 만든 요리...'참치 타르타르'와 '야채 비너그레뜨'...

가정요리 시간에는 시식도 하고, 싸가기도 하는데

조리사 과정에서는 만든 요리는 모두 버린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게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간 보는 일 외엔 손님상에 오르는 요리는 일체 먹지 않아야 한다'며

미리 훈련시키는 것이라 귀뜸하시는 원장님..

그렇게 깊은 뜻이..!

하지만 아들과 나는 속으로 무지무지 아까워했다. ㅎㅎ

 

 

                                                                                                레시피!

 

 

                                                                              채 써는 솜씨가 많이 늘었다.

                                                                           ( 나는 항상 너를 응원한다, 아들아..!!)

 

 

 

 

출처 : Wishing to be Super Mom!!
글쓴이 : 슈퍼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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