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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by 맥도널드 배인 (2)

namaste123 2009. 4. 3. 09:03


"Beyond the Himalayas"

by Murdo MacDonald-Bayne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 1장)



나는 스코트랜드의 하이랜드(高地)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다. 일찍이 일곱 살 때부터 여러 가지 심령체험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나이에도 그런 이상체험들을 퍽 자연스럽게 이해했던 것 같다.


보통은 보이지 않는 세계-사실은 그저 얇은 장막 한 겹이 사이에 있을 뿐이지만-가 나에게는 이 물질계처럼 분명했었다. 나는 그런 은혜-은혜라고 해도 된다면-를 받아 지니고 태어났다. 이렇게 말하면 나라는 사람은 조금 특별한 사람처럼 여겨질지 모르나, 실은 인간은 자각을 못할 뿐이지 누구나가 그런 은혜를 받아 지니고 있다.

나의 그런 체험과 그런 것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신이 나서 이야기했지만 양친은 별로 좋아하지를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말을 너무 엉뚱하고도 세밀해서 보통 사람들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귀한 책 몇 권이 내 수중에 들어왔다. 어떻게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것은 고대 요가에 관한 책들이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때 그 책의 내용을 어른들이 깜짝 놀랄만큼 정확하게 이해했었다.

그 책들을 열심히 읽고 소중히 간직했다. 그러나 그런 책들마저 끝까지 밝혀주지는 못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막연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때는 그것이 딱히 무엇인지를 꼬집어내지는 못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실은 그 무렵에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말하자면, 그런 책들은 하나의 관념 내지 사상을 줄 뿐이고 관념이나 사상은 사물 그것은 아닌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이 중대한 사실을 규명해 왔다.

‘생명’이라는 말 또는 ‘생명’의 관념은 생명 그것은 아니다. ‘신(神)이라는 말 또한 신 그것은 아니다. 세상의 종교가나 교사들은 생명이 무엇인지를 말하려고 애쓰지만 그런 말이나 노력은 그저 ’그것‘에 대한 관념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해도 그것은 ’생명‘ 그것은 아니다.

오늘 날 이 세계에는 종교나 이념, 단체나 국가 간에 대립과 투쟁이 너무도 많다. 그 까닭은 우리가 너무도 많은 서로 다른 관념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사(大師) 예수의 거룩한 모습을 본 것은 여섯 살 무렵이다. 그것은 책이나 그림에서 오관으로 보는 상이 아니라 생명이 약동하는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독자 여러분이나 나와 꼭같이 살아있는 생생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일은 내게 굉장한 영향을 주었다. 어른들은 나를 침대에 눕히고 달걀과 술을 넣고 휘저어 거품을 낸 우유를 먹였다. 다른 음식은 일체 입에 대지 못하게 했다. 의사는 나의 심장이 본래의 위치에서 두치나 밀려나 있다고 했다.

꼼짝못하고 침대에서 지내야 하는 그 생활은 눈물이 나도록 지겨웠다. 그러던 어느 아침 갑자기, “일어나라! 밖으로 나가 뛰어 놀아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키는대로 했다. 그 순간 나는 말끔히 나아 있었던 것이다.  이 경험으로 죽음이란 없는 것이고 물질계 밖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나의 신념은 굳어졌으며, 여기에 대해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순간적인 완전한 치유가 의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일이 있고나서부터 나는 아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중간에서 일단 멎었다가 천천히 떨어져 발끝으로 사뿐히 땅에 내려설 수 있게 어느틈엔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 무렵 내가 소중히 간직하던 그 요가책에도 그런 일이 쓰여 있었다. 요가 행자가 땅에서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도 그 책에서 읽었다. 그런 술법을 확실히 알지는 못하면서도 나는 비슷한 짓을 저절로 하게 되었던 셈이다.

그런 엉뚱한 일들을 자주 보여주었으니 어머니,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같았다. 어른들은 내가 원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나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며, 나 자신도 그런 부모의 심정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겨울 밤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아주 오래된 나의 집에는 큰 벽난로가 있고 겨울이면 그 속에는 언제나 굵은 통나무가 활활 타고 있었다. 나는 윗도리를 벗어서 의자 등에 걸쳐놓고 바른 발을 난로 앞 철책에 얹고 불을 쬐는 것이 재미였다. 열 다섯 살이 될 무렵까지는 나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복장인 편안한 킬트를 즐겨 입었었고 그런 복장으로 고지에서의 사냥대회에도 자주 따라다녔다.

벽난로 위에는 우리 맥도난드 가문의 용감했던 조상들이 여러 전쟁터에서 휘둘렀던 양날의 큰 칼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기념할만한 칼과 총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맥도날드 가문의 용사들 이야기는 정말 재미가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아버지 자신의 모험담이 많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외국을 많이 다니셨고 그런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런 것이 뒤에 내가 더 많은 지식을 얻고자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방랑벽의 씨가 된 셈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여행에 대한 정열은 점점 강해져서 마침내 낯선 이방으로 날아다니는 날개를 펴기에 이른 것이다.

원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식을 잘 교육해야 한다는 지나치리 만큼 강한 집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도 대학에 보내졌다. 대학에서는 의학을 택하기는 하였지만 나는 아무래도 의학 공부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생명’ 그것이야 말로 유일한 살리는 힘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나에게는 의학 같은 것은 그저 죽은 시체를 다루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훗날 내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병자를 고쳐주는데 있어 이 때에 얻는 지식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드디어 나는 인도로 가기를 결심하기에 이르렀고 인도에서 여러 요가 행자를 만나 많은 지식을 얻었으며 보다 높은 지혜도 열렸다. 이런 일들이 내가 한결같이 추구한 목표로 나를 접근시켜 주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인도 여행을 여러 번 반복했으나 언제나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나는 배로 페르샤 만에서부터 바스라로 갔으며 거기서 티그리스 강을 느릿느릿 거슬러 올라가 사막을 넘어 유프라테스 강으로 나갔다. 아라비아 사막들과 함께 지나면서 그림같은 모스크(마호멧교 사원)와 미나레트(사원의 뽀족탑)가 남아있는 바그다드의 고대 도시를 더듬었고, 바빌론의 유적들을 살폈으며, 성서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옛 자취들을 페르샤와 팔레스티나에서 찾아보았다.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 나는 영국군 하이랜드 연대에 들어가 장교로 임관되었으면 십자훈장을 받았다. 기총소사를 무릅쓰고 부상한 인명을 네 번씩이나 구출한 공적으로 외국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나는 중국과 일본을 돌아 다시 인도로 갔다. 거기서 인도챠이나로 빠져 찬란했던 옛 모습의 유일한 증거로서 거대한 앙콜와트를 남기로 하룻밤 사이에 홀연히 사라져버린 캄보디아의 고대 자취를 둘러보았다.

이어서 캐나다를 동에서 서로 그리고 다시 서에서 동으로 답사했고 미국으로 가서 6천마일 길을 자동차로 누볐으며, 멕시코와 남아프리카를 찾았다. 천천히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면서 4천년 전에 실존했다는 로디지어의 진바브웨어 고대유적을 살펴보았다. 이와 흡사한 유적을 브라질에서도 본적이 있으니, 이처럼 유적들이 닮았다는 사실은 뭔가 문명의 고통성이 있음을 가리킨다고 여져진다. 언젠가는 고고학자들이 그런 고대문명의 기원을 다시 조명할 날도 있을 것이다.

리빙스턴과 스탠리의 발자취를 따라 거대한 빅토리아 폭포의 상류 잔베지 강을 탐험했고, 고대 이집트의 유적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유럽은 안가본 나라가 거의 없다.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 그리고 남태평양의 섬들도 두루 돌았다. 그리하여 나는 지구의 구석구석을, 거의 다 뒤졌으며 일곱 바다를 항해한 셈이다.

온 세계에서 병자들을 수없이 고쳐주면서 가르침을 전하여 이름이 알려지게도 되었다. 그래도 내게는 채워지지 않은 소원이 남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금단의 나라, 신비의 티벳-세계의 지붕을 찾는 모험이었다.

어느 날 나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실은 그 무렵에는 이미 자신의 막연한 목표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어떤 인물이 영적으로 나타나서 “아프리카로 가라, 거기서 다시 인도로 가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다. 그 영(靈)의 인물은 내가 취하게 될 경로를 자세히 일러 주면서 인도에서는 또 다른 모습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가 직접 나를 히말라야 산맥 저 너머로 데리고 갈 것이라고했다. 이 사건은 그 후의 모든 일에 직접 관련되는 일이니 조금 자세히 설명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때 나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최초의 강연을 하고 있었다. 청중들을 앞에두고 한 30분쯤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강당 입구는 모두 닫혀있고 주최자나 안내자들은 밖의 로비에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한 인물이 홀연히 모습 -영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을 나타내어 이상과 같은 말을 한 것이다.

그 모습은 말을 마치는 순간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청중도 실지로 그것을 목격했었다. 이 일의 뜻은 내게는 이해가 갔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짐작도 될 턱이 없었으며, 사실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을 화제에 올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인챤가 호(배의 이름)가 후그리 강을 거슬러 캘커타로 향해 가고 있을 대의 가슴 설레이는 흥분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그 배는 남아프리카 더번에서 탄 배였다.

뜻 깊은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다섯 번째의 인도행이었지만 뭔가 새로운 것, 전에없이 또렷한 느낌이 있었다. 영의 모습은 조았지만 살아있는 육신으로서의 모습은 보지못한 이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마냥 설레이는 것이었다.

배가 부두에 가까워지자 와글거리는 쿠리들의 고함소리로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나는 서둘러 앞장서서 상륙했다. 배에서 내려서는 나를 벌린 손들이 포위했다. 모두가 돌을 달라고 내민 거지들의 손이었다. 그러나 여러번째의 인도여행이라 그들의 수법도 알고 이또 그들과 통하는 말도 할 수 있는 나였다.

사실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를 맞아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일만이 나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그럴싸한 사람은 없었다. 맥이 탁 풀렸다. 끝내는 내가 속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승객이 다 사라진 뒤에야 나는 단념하고 짐을 챙겨 시내의 그랜드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머물면서 스와미 요가난다와 스와미 라마나 그리고 다른 요가행자 몇 분을 방문했다. 모두가 실망하지 말고 용감히 히말라야로 가서 필요하다면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것이라도 감행한다면 반드시 그분은 나타나서 인도해줄 것이라고 격려해주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히말라야 방향으로 가는 간선철도의 종점인 북벵갈의 시리그리까지의 열차편을 예약하려고 그날 오후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는 마치 천사와 같은 얼굴의 시크교도였는데,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 관광객쯤으로 넘겨짚고는 엉뚱한 방향으로 차를 몰아 역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수법은 이미 환히 알고 있으므로 나는 모르는채 내버려 두었다가 내릴 때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리저리 돌다가 겨우 역에 차를 대고는 천사 얼굴의 운전사는 ‘5루피 주세요’라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2루피를 주었다. 그래도 그것은 보통보다는 많은 금액이었다. 그리고는 ‘네가 한 짓은 상당한 악질이다. 고발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고 꾸짖었다. 그때 운전사의 얼굴에 천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찍소리도 못하고 꺼지듯 달려가 버렸다.

저녁때 내가 인도 주둔 영국군에 근무할 당시 사귄 어느 영국군대령을 방문했다. 그는 생명을 깊이 연구하고 있었고 이 세상을 뜰 때까지 나와의 친교를 계속했던 사람이다. 저승에서 그는 틀림없이 높은 지혜를 열고 있을 것이다.

나를 반가이 맞아준 그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둘이서 보디-지혜라는 뜻-협회로 갔다. 이 협회는 뜻이 높은 인도 지성들의 모임이며 학자, 의사, 요가행자들의 클럽이다. 협회에서는 마침 캘커타 대학교수 샤스트리카가 고대 산스크리트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었다. 그 분은 고대 산스크리트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분이다.

잠시 후 내가 참석한 것이 모두에게 알려졌고 교수의 강연이 끝나자 나에게 그간의 편력과 이번에 오게된 이야기를 하라는 요청을 해왔다.

보디협회 회원 가운데에는 인도의 뛰어난 스승들이 즐비했다. 스리오로빈도, 스와미 요가난다, 저명한 과학자인 스와미 라마나, 민족시인 타골, 위대한 간디 등 모두가 큰 지도자들이다. 그 자리에서 친구인 대령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인도에 와 있는 우리 동포-영국이- 가운데에는 터무니없는 우월감으로 잔뜩 부풀어오른 사람이 상당히 있다네. 나는 그것이 아주 못마땅해. 그런 덧없는 우월감, 그것이 깊은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야. 그런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더더욱 그 우월감이 커지는데, 그런 감정은 바로 자신들의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그 어리석음이 폭로되고 마는 예가 허다하니 딱하기 이를데 없다네. 이 세상에서 위대한 것은 겸손 그것이야. 인간은 지혜가 열리기 시작하면 겸손해지지. 이런 의미에서 위대함, 곧 겸손의 씨가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심어져야만 할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 영국인은 어김없이 세계에서 완전히 잊혀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 나는 시리그리행 열차를 탔다. 북벵갈행 간선철도의 종점인 시그리그에 닿으니 다시 히말라야 중턱까지 실어다줄 산악철도의 조그만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갈아타려고 그쪽으로 가는데 뭔가 불쾌한 냄새가 풍겨왔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전에는 멀쩡했을 것이 틀림없으나 지금은 몹시 더러운 헝겊으로 감싸여진 손을 내밀고 있는 문둥병자가 눈에 띄었다. 그 당시는 나병자는 타인에게 1미터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도의 법규였다.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1루피를 던져주었다. 그때 인도 경관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경찰봉으로 그 문둥병자를 마구 두들겨 패는 거였다. 나는 경관에게, “자네는 자기 자신을 두들겨 패고 있는 거야, 그걸 알겠는가?”하고 타일렀다. 멍청히 바라보는 경관을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떴다. 내가 한 말의 뜻을 그가 스스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면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전에는 인도에서는 나병자가 눈에 띄면 무조건 수용소에 처넣게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몸을 숨기는 환자들이 많았고 그것이 도리어 병을 퍼뜨리는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여러 가지 특효약이 나와 상당한 치료효과를 보고있다고 한다.

그 장난감 같은 산악철도의 객차는 높이가 겨우 나의 어깨에 닿는 정도였다. 조그만 기관차는 녹색으로 칠해져 있고 객차는 모두 빨간색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허리를 굽혀야 하고 앉아 있어도 고개가 천장에 닿았다. 그 조막만한 기관차에 깎아 세운 듯 가파른 경사를 12량이나 되는 객차를 끌고 올라갈 힘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럴 힘이 있으니까 열차가 운행될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생각은 그런 일을 가능케 하는 증기의 놀라운 힘에 미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체를 할 수 있게하는 근본은 생명 그것이고, 마치 기관차 그 자체에는 아무 힘도 없듯이 육체 그것에는 힘이 없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들어섰다. 열차는 거의 나선형으로 놓여있는 고가 철로를 빙빙 돌면서 힘겹게 올라가 차츰 산맥 중턱에 이르렀다. 마침내 1천 7백 미터 높이에 도달하여 기리코라는 마을에 멎었다.

정류장에는 키가 겨우 1미터 남짓밖에 안되는, 그거나 얼핏 보기에도 다부진 몸매의 고산족 여인 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양어깨너머 잔등으로 기다란 끈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내가 짐을 들고 하차하자 여인들은 재빨리 다가와서 늘어뜨린 끈을 그 묵직한 상자 밑으로 꿰어가지고는 마치 성냥갑이라도 들어 올리듯 휙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힘이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니 요령이 있었다. 끈은 이마에 걸려있고 어깨너머로 짐을 끌어올려서는 무게를 등에 싣는 것이다. 그녀들 가운데에는 그런식으로 피아노 한대를 지고 카린퐁에서 다지린까지의 80킬로 미터를 운반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 자신은 미리 예약해 두었던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여전한 비탈길을 구불구불 기어올라 카린퐁에 닿았다. 히말라야 산맥 속의 이 조그만 거리는 인도의 시킴과 티벳 사이의 통상로 출발점이다. 여기서부터 모든 화물이 군데군데 길 너비가 1미터 남짓밖에 안되는 곳도 있는 도로 위를 운반되어 가는 것이다.

카린퐁에 닿아 알게 된 것은 여기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아주 다양한 인종의 집합이라는 사실이었다. 인도인, 티벳인, 시킴, 네팔, 부탄 사람... 거기에다 캘터타의 무더위를 피하여 서늘한 산공기 속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몇몇 백인까지 있었다.

인도는 네팔, 시킴, 부탄의 고산국들을 사이에 두고 티벳과 접해 있다. 그뿐 아니라 교역로의 출발점이기도 하여 카린퐁은 다지린보다 중요한 지점이 되어있다.

이 거리에서 나는 나의 캐러밴을 끌어 모았다. 통역 한 사람, 통상로에 출몰하는 산적들을 다룰 수 있는 하인 겸 호위역 한 사람, 그리고 짐꾼 셋을 고용했으며 내가 탈 티벳 조랑말 한 필, 짐을 나를 노새 두 마리를 갖추었다.

티벳으로 오가는 화물은 모두 노새나 당나귀 또는 짐꾼의 등에 실려 운반된다. 카린퐁에서부터는 도로와 철도로 캘커타까지 수송되며 거기서 다시 여러 목적지로 분산, 수송된다. 다지린으로부터 오는 차(茶)는 산악철도로 시리그리까지 운송되고 거기서 다시 간선철도에 옮겨 캘커타로 보내지고 이어서 세계 각지로 선적된다.

카린퐁에서는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나와 동성이 맥도날드씨를 알게 되었다. 그는 반은 티벳 사람이었다. 일찍이 티벳 야툰에서 영국의 무역 담당관으로 근무하는 사이에 티벳 여인을 아내로 삼게된 스코틀랜드 출신의 맥도날드씨의 아들이었다.

그와 나는 곧 친해졌다. 그는 티벳어와 힌두어 그리고 물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 사이에 되도록 티벳 말을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이미 나는 힌두말을 상당히 잘 할 수 있어서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티벳 입국허가가 나오기까지는 카린퐁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 나는 언젠가 만나게 될 그 분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멀리 티벳까지 가야 만나게 될까보다고 체념하면서 일러준대로 나는 인도에 왔지만 캘커타에서도 카린퐁에서도 나를 맞아주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다. 다만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한편 나는 안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센 촉구를 받고 있었다.

카린퐁에 머문지도 벌써 사흘째, 그 날 나는 호텔을 나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라마승의 옷보다 약간 짙은 자주빛 법의를 걸친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나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만큼 강하게 그는 나를 끌어당겼던 것이다.

이윽고 그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오~ 이 사람, 드디어 왔군 그래.” 하고 완벽한 영어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해서 대답도 못했다. 이 카린퐁에서 이런 때 이런 식으로 나를 맞아주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못했었고 더구나 기대했던 도착 당일에는 아무 기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왼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내 몸은 마치 전기가 통하듯 짜릿했다. 이어서 그가 한 말, “나는 오랫동안 그대와 함께 있었지만 그대는 깨닫지 못했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 말이었다. 처음 듣고부터 줄곧 귓전에서 맴돌고 있던 그 말이었다. 이어서 그이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내가 한 일들, 내가 했어야 했던 일들 그리고 아마도 내가 하지 말아야 했던 일들-별로 대수로운 것은 아니라고 그이는 말했다- 등을 거침없이 들추었다.

과연 그이는 아주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나의 생활을 그이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며 내가 돌아다닐 고장 따위는 일일이 들출 필요도 없었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저절로 내가 여태까지 스스로 배우고 생각해 터득한 바를 그이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강한 욕망이 솟았다.

그리하여 나의 철학과 심오한 형이상학을 도도히 풀기 시작했다. 얼마동안-그 때 내게서는 시간관념이 사라졌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인가 그이는 아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어느만큼의 인상은 주었겠지’하고 생각했다. 적어도 관심을 기울일만한 가치가 내게는 있다는 것을 그이도 알았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나를 빤히 처다보고 있던 그이가 느슨히 말했다. “이 사람아, 그런건 사실은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네.” 만약 누가 망치로 내 골통을 때렸다 해도 그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멍해진 나에게 그이는 가볍게 말했다. “이 사람아, 내일 또 만나세. 자네 여행이 잘 진행되도록 모든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네. 아무 걱정 말게.” 그 말을 마치고는 그이는 몸을 돌려 완전히 빈 껍질이 되어버린 나를 남겨두고 걸어가버렸다.

정말 나는 빈 껍질이 되어 있었다. 그이의 짤막한 말을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 한 마디 말이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소중히 간직해온 것은 모조리 마음 속에서 내멋대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나의 삶에 있어 가장 귀한 것을 나는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싱싱하게 생동하고 있는 ‘지금’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오랜 세월을 얼마나 바보같은 짓만 해 왔던가.

그럴수록 그이의 그 한 마디의 고마움이여! 덕택에 이제까지 찾아 헤매던 것을 이번에는 끝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다시금 마음이 설레였다.

다음날 그이는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 일찌감치 와 주었다. “이 사람아, 이제 자네는 인간을 해탈시키는 진리의 제 1과를 공부한 셈이야. 자네는 여태까지 묶여 있었다네. 그러나 이제자기를 풀어놓기 시작한거야.” “그래요. 당신께서 그러헤 해 주셨습니다.” “아니 아니, 자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내 말로도 되지를 않는다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입국허가증이 도착한 1주일 후에 여기를 떠나도록 하게. 정글을 빠져나가서 티스터 강을 따라 시킴을 거쳐 간토꾸로 가도록 하는거야. 정글의 경험도 해 두는 것이 좋지. 간토꾸에서 나투라 고객을 넘어 티벳의 첫 번째 거리인 야툰으로 가게. 거기서 다시 내가 일러줄터이네.”

카린퐁에서의 그 1주간은 커다란 기쁨의 하나, 곧 기대하는 기쁨이었다. 그이와 출발 전에는 한 번 만날 수 있을 뿐이었지만 앞으로는 마음껏 질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저는 명상이 잘 안됐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 같습니다. 명상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수 없을까요?”하고 물었다.
“명상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라네. 동양식이건 서양식이건 어떤 식을 따르는 것은 명상이 아니야. 어떤 식을 따르면 그 어떤 형식에 자기의 마음을 맞추어버리는 결과가 되지. 그것은 자네가 피하려는 것이 아닌가.”

“명상에 대해 조금밖에 모르는 사람이나, 심하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명상을 가르치려는 일도 있는데 그런 명상에는 엉터리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래. 정말 그래. 아니 너무나 당연하지. 그러나 자네 자신도 그런 엉터리를 가르치려는 사람들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 말을 들어도 나는 불쾌하지가 않았다. 그 말대로임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이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의 마음을 한정해버리면 자네는 벌써 자유롭지 못해. 명상은 자유와 해탈로 이끌어 주는 것이어야 하지. 얽매이지 않는 마음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야. 자네가 제 마음의 움직임을 알게 되면 앞으로 몇 달 동안 함께 공부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겠지만 자네는 보다 큰 해탈을 얻을 것이야.”
(아직도 몇 달 씩이나! 그렇게 몇 달씩 오랜 기간이 필요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실지로 나의 공부가 이루어져 그이 곁을 떠나게 된 것은 몇 달 뒤였다. 하긴 그이의 분부만 있었다면 그 이상의 세월이라도 히말라야 저편에 머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동안, 그이는 말을 멈추고는 밖으로는 들리지 않는 나의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나의 생각이 그에게는 환히 보인다는 것을 나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특정 시스템의 훈련을 받아버리면 어떠한 해탈도 있을 수 없다네. 전보다 더 묶이는 것뿐이니까. 참된 명상은 마음 저쪽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라네. 특정 시스템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방해하지. 왜냐하면 그것은 얽어매고 파괴하는 한낱 자기최면이기 때문이야.”

그 말을 듣고 내가 나 자신의 여태까지의 사고방식과 사상을 정리하기 시작하지 그이는 말을 멈추었다. 잠시 후 나는 느껴지는 대로를 그이에게 말했다. “이제야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럴테지.” 하며 그이는 풀이해주었다.

“무애자재(無碍自在) 곧 해탈 안에서만 참된 창조는 있을 수 있다. 마음에서 일체의 신앙, 형식, 계율이 떨어져 나가야 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자기를 지배하고 제약하는 것들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남의 신앙이나 관념, 사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창조력으로 창조할 수가 있다. 그것은 창조가 아니라 다만 모방일 따름이다. 스스로의 사고방식과 사상형성의 과정 전체를 반성하는 것이 자신을 아는 출발점이 된다. 그것이 바로 자유 곧 해탈로 주는 것이다 어떤 신앙, 어떤 관념, 사상을 갖기를 계속한다면 그 너머에 있는 것은 결코 알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의 정체, 관념, 사상의 정체가 알아지면 그 너머에 있는 것이 터득되어 참으로 있는 것, 한낱 관념이나 사상이나 신앙이 아니라 영원히 지금 여기에 있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그것’을 깨달을 것이다. ”

이제야말로 나의 마음의 구름이 걷혀간다. 나의 마음에서는 여태까지의 온갖 관념, 신앙, 사상을 털어내는 대청소가 시작된 것이다. 스스로도 그것이 자각되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까. 이것이 그때의 나의 심정이었다. 듬을 두지 않고 그이는 말했다.
“감사란 자기 자신과 ‘실재’와의 분리를 믿고 있음이라네. 그러나 분리 따위는 있을 수가 없어. 그것은 온갖 신앙, 관념, 사상,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 따위에 있는 마음의 망상일 뿐”

‘자네가 다른 모든 것을 제쳐놓고 어떤 하나의 이미지나 관념에만 마음을 집중하려고 한구석에 앉아 명상하는 것을 나는 보아왔어. 그러나 자네는 한번도 그것에 성공을 못했지. 모순 속에 고요가 있을 턱이 없지. 모순이 그칠 때 비로소 고요는 나타난다네. 모순이 그치는 것은 모순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 만이야. 고요함이란 모순 속에 놓이지 않은 마음 본래의 상태란 말일세! 자네는 그 낭비 많은 모순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지만 결국 그것은 허망이고 그런 것은 마음 저 너머에 있는 오직 하나인 창조력과 무애자재 곧 해탈로 이끌어 주는 참된 명상은 아니라네.“
 
“아 아, 그랬었구나”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으로 깊은 숨을 쉬었다. 찾아 헤매던 해탈을 이제야말로 얻은 느낌이었다. 그이의 말씀이 나의 귀를 울린다. “그런 것은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라네!” 그렇다. 나는 그저 생각이나 사상을 진리로 알고 그 생각이나 사상으로 실재를 만들어 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될 턱이 없는 것을. 그이는 말을 이었다.

“실재는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내어지는 것이 아니야. 실재는 스스로 실재하는 것이야. 자네가 그것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야. 자네의 마음이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와졌을 때 비로소 그것은 나타나지. 그 이전은 결코 아니야. 그때 자네는 자기가 곧 진리라는 것, 자기가 생명 그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태까지의 나의 삶 전부를 걸고 이해해온 이상의 것을 이제는 참으로 이해한 것이다. 나는 자유 속에 사는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을 말로 나타낼 수는 없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어떤 진실이 있었다. 아무튼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내가 마음 속에서 만들어냈던 것이 실재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창조의 힘은 나의 안에 있었다. 이제 나는 그 힘으로 하여금 스스로 나타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온갖 신앙이나 주의, 관념, 사상에서 해탈하는 만큼 창조력은 커진다. 이제 그것을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다. 이 놀라운 기쁨, 나는 그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의 기쁨을 그이도 느끼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이 사람아, 그게 전부라네.”

나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의 명상은 나 자신을 고립시키는 그저 하나의 형식이고 그 속에서 나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기억이라든가, 이해되는 일도 없는 여러 가지 개인적 체험을 소중히 끼고 다녔던 것입니다. 이것을 정말 알게 될 때까지는 그런 자기한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턱이 없다는 것을 이젠 알았습니다.”

“그렇다네. 이렇게 말해도 좋겠지. -그대는 끊임없이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자기 최면상태에 스스로 제 마음을 몰아 넣었다. 그러나 그런 상태로 몰아넣어진 마음은 죽어버렸다. 참된 명상은 생명의 참의 표현인 것이다.-라고. 그렇게 해서 자네는 결국 제 마음을 둔화 시켰을뿐이야. 그러나 이제 그 둔화상태가 끝나 비로소 자네의 자기한정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지. 안그런가!”

정말 그렇다. 그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왜 좀더 빨리 알지 못했을까. 나의 이런 생각을 그는 분명히 읽고 있엇다.
“그렇다네. 자네는 자아(自我) 곧 자기의 모든 관념들을 냉정하게 살펴보고,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있는지 그리고 자기가 하는 말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마치 남을 관찰하듯 세밀히 관찰함으로써 ‘자아’ 곧 자기의 생각의 존재양상을 알아야 한다네. 그렇게되면 자기 자신의 자기한정이 드러나지. 그 자기 한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탓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관찰할 수가 있게 되지. 이런 방법으로 자네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며, 여태까지 두려워하거나 탓하거나 회피하거나 저항함으로써 제가 저를 얼마나 한정해 왔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두려워하고 탓하고 회피하고 저항하는 것이 ‘자아’가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 해탈 속에는 모순도 망상도 없어. 이 과정 속에서야말로 참된 명상이 있는 것이라네.”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해탈 곧 진리는 그것을 탐구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 편견, 자기한정, 망상 따위 ‘자아’가 덧없는 짜임새 전체를 분명히 앎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며, 그런 것들을 꿰뚫어 보았을 때 그것들은 녹아없어져 남는 것은 실재, 곧 ‘참나(眞我, 神我)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렇다네. 명상이란 다른 자아, 곧 남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이이져 있고 그대로 전체이고 그대로 완전한, 그리고 어떤 한정도 영향도 받지 않는 참나를 발견하는 일이야. 그런 체험만이 참된 명상이라네. 자네의 자기한정에서 비롯되는 상념이 ‘자아’에서 시작되어 ‘자아’에서 끝난다는 것, 그것은 얽매인 마음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침묵이 찾아들지. 그것은 제가 애써서 만들어내는 침묵이나 자기최면의 결과인 침묵이 아니고, 또 시간에 속해있는 침묵도 아니며 참으로 영원한 것이 계시되는 침묵이야. 이 큰 침묵이 바로 영원 그것이라네. 


이 큰 침묵 속에 창조의 근원이 있다네. 이것이 큰 스승들이 알고 있는 침묵, 오래지 않아 자네도 알게 될 침묵이라네. 그것은 실재하는 시간이 없는 기억이나 경험에 영향 받지 않는 모순 없는 자리라네.  여태까지 얼마나 제가 저를 한정해 왔는지를 모르고 그저 덮어놓고 명상을 하라고 제 마음에 강요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며 다만 미망을 더 키울 따름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모르고는 명상도 무의미하지. 왜냐하면 그런 명상은 그저 자기한정에 따라 무엇인지를 비춰내 보고자 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야. 그런 것은 분명히 실재가 아니야.”

나는 이제 비로소 깨달았다. 실재의 한없는 큰 힘을 깨달은 것이다. 또 그이가 지닌 큰 힘을 깨달았다. 그만큼 ‘나’라는 것이 없어지면 신은 남김없이 스스로를 나타내실 것임을 알았다. 그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그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이는 일어서서 나를 축복해 주셨다. 내게서 우러나오는 그이를 향한 사랑을 느끼셨는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신의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고 나에게로 오는 자 없다.”

그이가 간 후 나는 말없이 앉아있기만 했다. 마치 어떤 큰 힘이 나에게로 찾아들어 강렬한 실재의 느낌을 남기고 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느낌은 내가 보다 더 해탈을 얻어감에 따라 더욱 커질 것이라고 여겨졌다.

히말라야를 넘는 길을 떠나기 전날 나는 그이를 다시 만났다. 그이는 야툰에서 서로 다시 만나게 된다고 말했고, 앞으로 책에서는 그이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 까닭은 언젠가는 독자들도 알게 될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