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예술과 잠재력

namaste123 2008. 8. 23. 00:18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의 혁명] 중에서

예술과 잠재력


여러 세기를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위대한 미술·음악·건축 작품들은 높은 끌개패턴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걸작들을 통해 문명을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들이 절대와 은총,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헌신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미술은 세속에서 우리들이 얻으려 하는 가장 높은 영적 생활의 분출구가 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가 피디아스(Phidias)는 육체적인 인간의 이상형을 보여주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실체의 형상으로 인간 정신을 표현해 주었다.

위대한 예술은 인간 경험과 이 세상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드러낸다. 이것을 우리는 '아름다움'이라고 부른다. 이론 물리학자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들도 겉으로 보이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발견한다. 미켈란젤로는 하잘 것 없는 돌 조각에서 '다윗'이나 '피에타'를 보았으며, 끌로써 완전한 형상으로 새겨 놓았다. 그는 시스틴 성당의 벽에서 무의미하고 질서 없는 무늬를 보는 동안 예술의 영감을 통해 황홀한 ABC를 생각했으며, 예술의 기교를 통해 우리가 '최후의 심판'으로 알고 있는 A→B→C를 완성했다.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유산은 내면적인 것이다.예술의 아름다움에 눈뜰 때,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과 민감성이 자라나기 시작하며,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되고 기쁨을 갖게 된다. '예술'과 '사랑'이야말로 인류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사랑 없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영혼을 짓는 것이며,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합작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의 시대부터 그러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에 의한 미술이나 사진예술들은 손으로 완성된 작품들보다 항상 측정수치가 낮다.

원본과 기계로 복사된 그림을 번갈아 보여주며 근육 강도를 재는 시험을 해보면 예외 없이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진 그림을 볼 때는 우리의 반응이 강해지고, 복사판을 볼 때는 그림의 내용과 아무런 상관없이 근육 반응이 약해진다. 불쾌한 그림이라도 원본일 때는 유쾌한 복사판 그림보다 사람들을 강하게 만든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랑을 쏟는다. 인간의 손길과 창조성에는 위대한 잠재력이 존재한다. 그러니 운동역학 시험은 모조 예술품을 가려낼 수 있는 검출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낼 수 있다.위대한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예술이란 인간의 존엄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예술에 있어서 인간 정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융의 업적은 역사상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중 가장 높게 측정된다.(물질이 결정론처럼 낮은 끌개 패턴을 갖는 다른 많은 인사들은 훨씬 낮은 수치를 보여주었다.)

음악은 어떤 면에서 가장 미묘한 것이다. 음악은 예술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음악은 이론적인 좌뇌가 아닌 무의식적인 우뇌의 감각을 자극하는 가장 본능적이고 정서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은 끌개 패턴이 어떻게 현실을 질서화 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혼돈과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고 싶다면, 또 예술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갖게 되기를 원한다면, 소음과 음악의 차이를 생각해 보아도 어느 정도 자명해진다.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음악으로 유명한 에스토니아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아르보 파르트(Arvo Part)가 자신의 작곡 과정을 묘사한 글은, 끌개 패턴이 천재적 예술인들에게 어떻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곡을 쓰려면 오랫동안 뜸을 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엔 5년이 걸리기도 한다......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음악 속에서, 나의 작업 속에서, 나의 어두운 시간 속에서, 나는 '이 한 가지'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복잡성과 다면성은 나를 혼돈 시킬 뿐이다. 나는 모든 것이 일치된 하나의 조화점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내가 느끼는 이 한 가지는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 있는가? 이것은 여러 가지 변장을 하고 그 흔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떨어져 나가고...... 나만 홀로 침묵과 더불어 존재한다. 오직 하나의 음만이 아름답게 연주될 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다. 시간과 무시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순간과 영원은 우리들 속에서 항상 소용돌이치고 있다.

예술 중에서도 음악은 우리 눈에 가장 쉽게 눈물을 맺히게 하고, 춤을 추게 하며, 사랑과 창조의 절정에 오르도록 고무해 준다. 우리는 작곡가든 지휘자든 연주자든 그들이 고전음악의 끌개 장과 연결되면 그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에 주목한 바 있다. 고전음악은 많은 경우 아주 높은 잠재력의 패턴을 보여준다.

모든 예술 중에서도 건축은 가장 뚜렷하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어디에서나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장르이다. 물건을 사든, 일을 하러 가든, 여흥을 즐기든, 그 모든 행위는 건물 속에서 이루어진다. 건축은 그만큼 인간 행동의 배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건축 구조 자체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건축물 중에서도 성당은 특별히 경외의 대상이 된다. 성당의 에너지는 모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측정된다. 이것은 몇 가지 요인에 의한 것 같다. 성당은 음악·조각·그림·공간 설계등 여러 예술적 요인이 결합되어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당은 신에게 봉헌된 건물이다. 창조주의 이름으로 생겨나게 된 것들은 가장 높은 끌개 패턴을 보여준다.

성당은 우리들에게 영감을 줄 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장 고귀한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가르치고, 상징하며, 그것을 위해 봉사한다. 하지만 스케일이 꼭 커야 할 필요도 없고, 비용이 많이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아일랜드의 시골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조그맣고 그림 같은 초가집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주변의 건물 중에서도 단순하면서도 고상한 미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잘 고안된 공공 건축물은 유용성과 함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선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웅대한 지하철에서는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잘 융합되어 있고, 캐나다의 고층 아파트들의 도안과 배치에서도 그런 실례를 볼 수 있다.

오래된 문화일수록 아름다움의 실용성을 알고 있는 것 같고, 미적 감각 없이 디자인된 것들은 오랜 세월을 버티지 못한다. 건축학적으로 형편없는 동네는 살벌하고 폭력의 온상이 된다. 추하고 비인간적인 빈민굴의 도시 환경은 약한 힘의 표현으로, 비참과 범죄를 가져온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느 끌개 패턴에 의지하느냐에 따라 빈민굴의 철거는 못된 것이 될 수도 있고, 빈곤을 극복하려는 축복된 행위일 수도 있다. 환경보다는 환경에 대한 각자의 태도 즉, 그 환경에 체념하느냐, 아니면 극복을 통해 승리로 이끄느냐를 결정해 준다.

우아함은 미적 감각에 대한 잠재력의 표현이고, 잠재력은 선의 아름다움이나 스타일의 표현에서 항상 우아함을 나타낸다. 우리는 우아함을 고상함, 세련됨, 낭비 없는 노력과 연관시킬 수 있다. 이것은 우리들이 올림픽 선수들의 우아함을 경이롭게 여기고, 고딕식 건물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경외감과 같다. 우아함 힘의 양상은 삶을 인정하고 돕고,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지켜 준다.

우아함은 조건 없는 사랑의 단면이다. 또 우아함은 관대함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관대함뿐 아니라 정신적인 관대함, 즉 감사할 줄 알고 우리의 삶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아함은 정숙과 겸손을 뜻한다. 잠재력은 과시할 필요가 없으나 표면의 힘은 항상 자기 의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과시를 필요로 한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그들의 잠재력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감사할 줄 안다. 왜냐하면 이 힘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고, 단지 그들은 이 힘을 표현하는 통로일 뿐이라는 것은 그들은 이해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다양한 문화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에게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형태만이 변할 뿐이다. 높은 의식 수준의 사람들은 모든 형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생명이 신성할 뿐 아니라 형상을 갖춘 모든 것이 아름다움이 된다.





























자료:
http://blog.daum.net/xynetworking/4136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