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업과 윤회 차원에서 바라본 슈타이너의 교육학적 원칙

namaste123 2011. 6. 20. 03:33



'업과 윤회' 차원에서 바라본 슈타이너의 교육학적 원칙  

(The Pedagogical Law and its expression in Karma and Reincarnation)

 

...(전략)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운동 회원들로부터 가끔씩 자신의 삶의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두 가지 답변을 내 놓았습니다. 


슈타이너는 말하기를, 자신의 과제 중 가운데 하나는 윤회(reincarnation)와 업(karma)에 대한 지식을 이끌어내어 발전시키며 연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두 번째 과제는, 우리 각자에게 입문의 경로(the path of initiation)를 제시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에서 악의 사명(the mission of evil)이란 다름아닌, 인간을 일깨워 스스로를 입문의 경로로 가도록 이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입문을 수행하는 것이 슈타이너가 자신에게 부여했던 과제였으며,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해내었습니다. 그리고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이룩해 낸 그 성과는 너무나도 훌륭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그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주도적인 접근을 통해 답을 찾아내었습니다. 우리는 문제점에 봉착하면 대게 먼저 비판하기시작하며, 또는 단순히 그것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거기에 많은 반문을 제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새롭고도 긍정적인 주도성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전해오는 모든 자극(또는 도발: provocation)을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 교사의 발전과 전기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중략)


좋은 교사라면 다음의 질문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숙업은 무엇인가?" 

"그들이 자신의 운명을 발달시키고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 숙업의 완성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슈타이너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윤회와 업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내는 것이라 답하였으며, 이는 우리 시대의 모두가 함께 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이미 그 과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 다소는 윤회와 업의 영역을 탐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슈타이너에게는 그것이 자기 삶의 과제였으며,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제 생각에, 그것이 전적인 삶의 과제는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삶이 지상에서의 첫 번째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인간의 발달과정이 어떻게 펼쳐지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삶의 과제 중 일부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모임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윤회와 업을 다루고자하며 이는 슈타이너가 교육학적 원칙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교육학적 원칙(pedagogical law)이란 윤회와 업을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방법으로, 저는 경험의 경로로 특징짓고 싶습니다. 오늘날 상당히 많은 실험적 윤회 연구가 존재하며, 심지어 그 영역에서 많은 진단과 치료의 형태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돌프 슈타이너의 업에 대한 연구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사람의 의식을 느슨하게 풀어버리는 어떤 암시나 최면이 아닌, 관찰과 사고를 통해서 윤회와 업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이전 삶들에 대한 앎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영역, 그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하고도 많은 경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완이나 최면 방법들을 통해 곧바로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최면술사(치료사)의 목소리에 따라 지시를 받고 눈을 감고 어떤 음악을 듣게 되고 그리고는 자신을 놓아버리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요? 만약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단지 거기에 따르고 안내자의 손에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내면의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어떤 스승(guru)과 관계성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온당한 자신(자아)에 이르는 진정한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무의식 속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활발히 존재하고 있으며 나 자신의 이전 운명과 나의 주변인들의 그것을 구별해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내가 전해들은 것 또는 읽은 것들,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구별해내기도 어렵습니다. 인간관계의 전체적인 망상조직(network)이 나의 무의식속에 존재하고 나타나며 상들(pictures)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착각을 하거나 나의 실제와 맞지 않는 상에 빠지게 될 개연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이는 루돌프 슈타이너가 이 영역을 연구할 때 사용한 방법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의 방법은 오히려 관찰하고 사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식으로 우리가 가진 능력을 사용할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장 깨어있고 가장 의식적이고 가장 명확합니다. 교육학적 원칙에서는, 관찰과 사고에서 출발하는 것을 자아 경험으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교사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우리는 전생을 인식하는 순간에 다다를 수가 있을까요? 결코 최면적 암시가 아닌,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직관을 가지고자할 때 우리는 어떤 자아 관찰을 통해 시작해야 할까요? 무엇을 통해 내가 확고한 토대위에 서 있다는 확실성을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자아 경험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은 현재에(in the present)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듣고 있으며, 아직 저의 개관과 생각들이 정확히 어디로 향할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현재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나’가 항상 활동적인 자아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새롭고(fresh) 열려있으며(open) 과거로부터 구속 받지 않는 것은 바로 이 힘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진정 깨어있으며, 사고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식이며 주의력입니다. 


자아 경험은 주의력 경험입니다. 주의력결핍장애(ADD)는 자신의 완전한 자아 능력을 다시 획득하고자 갈구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 현존을 되찾고자하며, 그리고 이 현존의 부분적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자아가 현존'할 때, 우리는 집중할 수 있으며

현재 온기 있는 주의력을 통해 뭔가를 주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낮은 자아 경험의 영역, 아스트랄의 영역에, 사고-감성-의지적 삶으로서의 영혼, 감정적인 삶, 욕망적인 삶, 그리고 특정 생각들로 고착된 기억들로 이루어진 영역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의 생각들을 만나게 되는 자아 경험의 영역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려움, 희망, 반감을 만나게 되며, 이미 만들어진 세계-현실을 느끼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는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편견에 고정된 세계로, 예로, 이전 이러이러하여 지금 나는 그를 신뢰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영혼 내에서의 어떤 기본적인 요청을 발견하게 되는 매우 흥미로운 세계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삶에는 기본적인 선율(melody)이 있습니다, 나의 영혼적인 삶에는 다소 우울한, 또는 다소는 더 환희에 가득한, 더 무겁거나 또는 조화롭거나 그렇지 못한, 그 어떠한 기분(mood)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선율은 영혼 속에 내재하고 있는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의 특성들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자아, 즉 활동적 의지와 주의력을 가진 ‘나’의 능력(the capacity)이 고정된 사고를 의심하기 시작하거나 감성에 작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또한 어떤 힘겨운 움직임이 일어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재하고 있지만 원치는 않는 어떤 감정들과 사투를 벌이는 경험을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이런 것들이 오는 걸까요? 한편으로는 강렬한 상호작용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한 저항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꾸려고 하지만 커다란 저항이 있음을,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변화가 그리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음 그 아래 세 번째로 우리 삶의 습관들과 행동양식의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습관적 삶을 통해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자극받게 됩니까? 자신의 습관에 종속된 삶이 너무나 강하게 고착되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거나 또는 자기가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침에 언제 일어나는지, 방은 어떻게 꾸며놓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등에 대해 우리의 습관은 얼마나 큰 역할은 담당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를 들어,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겨가면 마치 자기 정체성의 일부를 잃는 것처럼 느끼며 자신의 삶에서 뭔가를 바꾸는데 주저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를 덜 강하게 느낍니다.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습관(또는 관습)에 결속되어 있습니다. 이는 삶을 결정짓는데 아주 중대한 영향을 제공하는 영역으로서, 습관과 행동양식을 통한 삶이 자신의 근본적 행동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습관적 행동이 이런 식이며 저런 식은 아니다 라고 하는 사실이 운명에서는 전환점들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

다. 이 영역에서는, 습관에 따른 삶에서부터 나오는 저항이 영혼의 영역에서부터 나오는 저항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뭔가를 바꾸기가 더욱 어렵게 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신체의 단계가 있습니다. 


신체적 단계에서 보면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신체 능력의 영역은 한계의 영역입니다. 비록 최상의 습관, 유연한 영혼, 그리고 상당한 주의력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신체 능력에 결여가 있다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걸음 길이는 다리의 길이에 따라 결정되는 특정 거리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업을 지켜볼 때, 여러분은 자신의 다리 길이에 따라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거나 무엇을 경험하게 된 일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정확히 만나게 될 그 순간에 어떤 특정한 장소에 다다르게 되어 수 초 또는 수 분 뒤에는 만나지 못했을 그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신체 크기에 따른 특정한 거리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몸의 신체 조건은 카르마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물론 우리가 어떻게 그 신체를 대하게되는가도 이 드라마 안에서 아주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거나, 노인, 젊은이, 성별, 외모, 인상 - 그리고 우리 모두는 거기에 가장 고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체의 단계에서 뭔가를 바꾸고자 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저항을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것이 업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주의력과 자아 존재의 영역에서 자신을 파악해보고 다음의 질문들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진정 내가 존재하고 있는 순간들이란 무엇인가? 나의 자아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전적으로 내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곧 우리는 어떤 한 곳에서부터, 아마도 제한된 관심들을 가지고 왔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의 모든 개인적 동기부여가 자아 영역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가 원한다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인식과 가능한 한의 주의력을 가진 자아 영역이야말로 가장 열려있고 유연한 영역임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다른 영역에서 우리는 더욱 더 많은 한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한계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영혼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 의 원형(原型)은 무한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고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감성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에 동정(同情)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지를 통해 어떤 능력을 익히고 발달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탐구해 볼 때 우리는 이 영혼의 단계에서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전생으로부터의 개인적 업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삶의 영혼의 단계에서 만나게 되는 한계들은 

마지막 전생에서의 자신의 자아 인식, 자신의 주의력, 

자신의 관심에 따른 '그 결과'들입니다. 


이번 삶에서 경험하는 아스트랄 체 영역에서의 한계성은, 이전 삶을 통한 자아 활동 존재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억인 것입니다(또는 흔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삶에서 우리가 자아 영역 내에서 열려있고, 자유롭고, 그리고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 것은, 이전 삶에서의 모든 나쁜 그리고 좋은 경험의 흔적들이 현재의 아스트랄 체로 옮겨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성의 영역에서 뭔가를 좋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전생에서 우리 자아 활동의 징표(signature)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의 선율을 느껴보면서 오늘 저녁 다음의 질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생에서 나의 운명을, 나의 전기를 구성한 어떤 억제된 감정이나 기억이 있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 나는 그것을, 내 인생의 선율, 내 영혼의 한계점들이 나에게 어떤 징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것을 만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여러분의 습관들을 관찰하고 탐구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영역 안에는 어떤 흔적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이 질문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이번 삶에서 나의 생명력과 습관의 영역에서 만나게 되는 어떤 한계점들이 내 전생의 아스트랄(영혼) 활동의 흔적은 아닌가? 그리고 어떤 한계점들과 특정한 형태를 가진 나의 신체를 만나게 되는 방식은 이전 삶을 통해 나의 습관과 행동양식이 정착되면서 나를 이끌고 갔던  방식의 흔적은 아닌가? 

 

이 연습은 단지 하나의 질문으로서, 심지어 하나의 가정으로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자아 훈련이 작용하는 방식을 인식할 때 이는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자아 훈련은 이러한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여러분은 자아 인식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으며 특정한 과제 또는 발달시키고자하는 특정한 능력에 주의를 집중하며 해나갑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의 의지, 감성, 동기부여, 그리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만약 여느 종류의 자아 훈련을 하고자 할 때, 여러분은 우선 자신의 영혼을 훈련하여야 하는데, 이는 어떤 진척을 이루고자할 때는 여러분 영혼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 수행을 하면서 특정한 능력을 발전시킬 때, 이는 곧 여러분의 습관들을 바꾸고 여러분 삶의 행동양식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양식과 습관이 바뀌면 여러분의 육체적 삶과 신체 상태 또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안한 이러한 자아 훈련 방식을 따를 때 우리는, 아스트랄과 에테르의 영역들을 거쳐 신체적 현실, 신체적 변화에 이르게 되는, 교육학적 원칙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삶은 다음 삶의 교육자(선생)입니다. 


동일한 순서가 적용됩니다. 자아 영역 안에서의, ‘나’의 힘 영역 안에서의 자기 연대성(engagement)이, 어떻게 나의 아스트랄 체가 발달하게 되며 자아의 힘에 의해 관통되어지게 되는가 하는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나의 인성은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아스트랄적 요소가 더욱 더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내 자아 활동의 흔적들은 거기로 침투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 활동이 더욱 인간적으로 발달할수록, 그것은 더욱 더 나의 행동과 습관의 영역 내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삶을 통한 내 영혼의 끝없는 노력은 다음 생에서 나의 에테르적 구성을 위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오늘 내가 나의 아스트랄 체를 대하는 방식은 현재 삶의 행동양식과 습관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다음 생에서 그것들이 형성될 방식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발달은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진행됩니다. 


내면의 온기와 ‘나’의 강렬함에서 출발하여, 아스트랄 영역을 관통하고, 모든 습관의 저항과 함께 에테르 영역을 변형시키며, 마침내 육체적인 것에 다다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삶에서 활동적이고, 두 번째 삶에서 자아 활동의 기억은 아스트랄 영역에 존재하며, 세 번째 삶에서 이 기억은 에테르 영역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신체 내에 이전 세 번 삶들의 결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 순간 우리는 잠깐 동안의 자아 탐구와 자아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전생들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관찰과 자각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 특성들과 흔적들, 방식들을 자아 경험의 영역 안에서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운명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에서 다섯 번째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멋진 강연장에서 서로같이 만나게 된 사실도 우리 모두 운명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운 좋게도 이렇게 특별한 해에 여기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만나는가, 어떻게 잠을 자는가, 어떤 생각들이 정말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는가, 어떤 것은 그러지 않았는가, 등등에 따라서 이겠지요. 어떤 것을 만나고 그리고 어떻게 만나는가가 우리의 주의를 끌고, 우리의 자아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그렇게 이번 모임을 마감하게 됩니다. 


신체적 행위를 통해 내가 행한 삶의 방식은 다음 생에서 운명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여기서 만난 것은 전생에서 실제적으로 준비했던 그 운명의 결과인 것입니다. 현 조건들을 만나는 방식이 전체적 운명의 과정을 한 걸음 더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사는 자신 안에 운명에 따른 다섯 삶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특성들과 기억들을 가진 두 운명체가 만나게 됩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러한 연유에서 그의 특수교육학 강의에서 이를 교육학적 원칙이라 일컫습니다. 자아 훈련과 업의 원칙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 영역에 존재하던 것이 다음 생에서 한 단계 아래의 영역으로 옮겨가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자아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교사의 자아는 학생의 '아스트랄 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교사가 주의력과 온기를 가지고 현재 어떻게 학생을 만나는가 하는 것이 학생의 아스트랄 체를 만들어내고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은 아직, 완전한 자아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스스로를 훈련시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의 영역 안에서 교사가 자신 스스로의 삶에대한 저항과 부족을 통해 아스트랄 체를 형성하게 된 방식은 곧, 


학생의 생명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영혼을 운용하는 방식은 학생의 에테르체에 아주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여러분들이 행동하는 방식, 여러분들 습관대로 행해지는 방식, 특정한 방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 또는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수업 중 잠시 휴식을 가지는 것 등 이 모두는 아이들의 신체 구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까지 교육학적 원칙의 본질에 대한 아주 간단한 개관을 해 보았습니다. 인간은 매우 유연하지만 구분되어집니다. 그리고 단지 우리가 교사로서 어떤 사람인가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에게, 우리와 함께 일하는 아이들에게, 중대한 교육적 영향을 발휘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잠시나마 숙고해보시기를 희망하며, 내일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으신 분들이 먼 곳에서 오신 줄 알고 있는데, 편한 밤 되시고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 1861년 2월 27일 - 1925년 3월 30일)는 안트로포소피(Anthroposophie, 인지학)의 창시자이다. 오스트리아의 독일인 철도원을 아버지로 두고, 현재에는 크로아티아에 해당하는 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나 신비사상가, 건축가, 교육자로서 유명하다. 독일어권에서 처음에는 괴테 연구자로서 시작하였으나 1900년대 부터 신지학협회에서 활동하였고 의견을 달리 하여, 1912년에는 탈퇴하여 인지학협회를 창립하였다. <위키백과사전>


Michaela Glockler의 강연 중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이 강연은 1998년 미국 발도로프 교사 회의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A Healing Education'이란 제목으로 강연집이 나왔습니다. - 이동민(allapologies)

 

업과 윤회에 나타나는 교육학적 원칙

(The Pedagogical Law and its expression‎ in Karma and Reincarnation)

 

...(전략)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운동 회원들로부터 가끔씩 자신의 삶의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두 가지 답변을 내 놓았습니다. 슈타이너는 말하기를, 자신의 과제 중 가운데 하나는 윤회(reincarnation)와 업(karma)에 대한 지식을 이끌어내어 발전시키며 연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두 번째 과제는, 우리 각자에게 입문의 경로(the path of initiation)를 제시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에서 악의 사명(the mission of evil)이란 인간을 일깨워 스스로를 입문의 경로로 가도록 이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입문을 수행하는 것이 슈타이너가 자신에게 부여했던 과제였으며,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해내었습니다. 그리고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이룩해 낸 그 성과는 너무나도 훌륭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그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면서도 주도적인 접근을 통해 답을 찾아내었습니다. 우리는 문제점에 봉착하면 대게 먼저 비판하기시작하며, 또는 단순히 그것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거기에 많은 반문을 제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새롭고도 긍정적인 주도성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생들로부터 전해오는 모든 자극(또는 도발: provocation)을 긍정적이고 주도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 교사의 발전과 전기(biography)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슈타이너가 품고 살았던 삶의 과제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였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도 그 질문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과제는 무엇인가? 좋은 교사라면 다음의 질문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교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들이 자신의 운명을 발달시키고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의 과제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슈타이너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윤회와 업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오는 것이라 답하였으며, 이는 우리 시대의 모두가 함께 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은 이미 그 과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 다소는 윤회와 업의 영역을 탐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슈타이너에게는 그것이 자기 삶의 과제였으며,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제 생각에, 그것이 전적인 삶의 과제는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 즉 우리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삶이 지상에서의 첫 번째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인간의 발달과정이 어떻게 펼쳐지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삶의 과제 중 일부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모임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윤회와 업을 다루고자하며 이는 슈타이너가 교육학적 원칙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교육학적 원칙(pedagogical law)이란 윤회와 업을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방법으로, 저는 경험의 경로(path of experience)로 특징짓고 싶습니다. 오늘날 상당히 많은 실험적 윤회 연구가 존재하며, 심지어 그 영역에서 많은 진단과 치료의 형태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돌프 슈타이너의 업에 대한 연구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사람의 의식을 느슨하게 풀어버리는 어떤 암시나 최면이 아닌, 관찰과 사고를 통해서 윤회와 업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이전 삶들에 대한 앎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영역, 그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하고도 많은 경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완이나 최면 방법들을 통해 곧바로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최면술사(치료사)의 목소리에 따라 지시를 받고 눈을 감고 어떤 음악을 듣게 되고 그리고는 자신을 놓아버리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요? 만약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단지 거기에 따르고 안내자의 손에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내면의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어떤 스승(guru)과 관계성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온당한 자신에 이르는 진정한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무의식 속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활발히 존재하고 있으며 나 자신의 이전 운명과 나의 친구들의 것을 구별해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내가 전해들은 것 또는 읽은 것들,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구별해내기도 어렵습니다. 인간관계의 전체적인 망상조직(network)이 나의 무의식속에 존재하고 나타나며 상들(pictures)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착각을 하거나 나의 실제와 맞지 않는 상에 빠지게 될 개연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이는 루돌프 슈타이너가 이 영역을 연구할 때 사용한 방법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의 방법은 오히려 관찰하고 사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식으로 우리가 가진 능력을 사용할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장 깨어있고 가장 의식적이고 가장 명확합니다. 교육학적 원칙에서는, 관찰과 사고에서 출발하는 것을 자아 경험으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교사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저녁 주무시기 전에 여러분들이 조금의 자아 관찰과 자아 탐구를 하실 수 있도록 이 교육학적 원칙에 대한 개관을 우선 하고자하며, 내일은 그것을 토대로 내용을 더욱 쌓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전생을 인식하는 순간에 다다를 수가 있을까요? 결코 최면적 암시가 아닌,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직관을 가지고자할 때 우리는 어떤 자아 관찰을 통해 시작해야 할까요? 무엇을 통해 내가 확고한 토대위에 서 있다는 확실성을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자아 경험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은 현재에(in the present)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듣고 있으며, 아직 저의 개관과 생각들이 정확히 어디로 향할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어떤 것 또는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계시는 중이거나 필기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현재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나’가 항상 활동적인 자아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새롭고(fresh) 열려있으며(open) 과거로부터 구속 받지 않는 것은 바로 이 힘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진정 깨어있으며, 사고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식이며 주의력입니다. 자아 경험은 주의력 경험입니다. 주의력결핍장애(ADD)는 자신의 완전한 자아 능력을 다시 획득하고자 갈구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 현존(ego presence)을 되찾고자하며, 그리고 이 현존의 부분적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자아가 현존할 때 우리는 집중할 수 있으며, 현재 온기 있는 주의력을 통해 뭔가를 주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낮은 자아 경험의 영역, 아스트랄의 영역에, 사고-감성-의지적 삶으로서의 영혼, 감정적인 삶, 욕망적인 삶, 그리고 특정 생각들로 고착된 기억들로 이루어진 영역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의 생각들을 만나게 되는 자아 경험의 영역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려움, 희망, 반감을 만나게 되며, 이미 만들어진 세계-현실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세계는 새롭지도 열려있지도 않습니다. 놀랍게도 이는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편견에 고정된 세계로, 예로, 이전 이러이러하여 지금 나는 그를 신뢰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영혼 내에서의 어떤 기본적인 요청을 발견하게 되는 매우 흥미로운 세계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삶에는 기본적인 선율(melody)이 있습니다, 나의 영혼적인 삶에는 다소 우울한, 또는 다소는 더 환희에 가득한, 더 무겁거나 또는 조화롭거나 그렇지 못한, 그 어떠한 기분(mood)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선율은 영혼 속에 내재하고 있는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의 특성들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주의력의 영역과, 형태가 갖춰진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양식적이라 할 수 있는 방금 전의 영역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자아, 즉 활동적 의지와 주의력을 가진 ‘나’의 능력(I capacity)이 고정된 사고를 의심하기 시작하거나 감성에 작용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또한 어떤 힘겨운 움직임이 일어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재하고 있지만 원치는 않는 어떤 감정들과 사투를 벌이는 경험을 합니다. 또는 가지고 있지 않은 감정들을 가지고자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이런 것들이 오는 걸까요? 한편으로는 강렬한 상호작용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한 저항이 있습니다. 우리가 바꾸려고 하지만 커다란 저항이 있음을,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변화가 그리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음 그 아래 세 번째로 우리 삶의 습관들과 행동양식의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습관적 삶을 통해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 만들어지고 자극받게 됩니까? 자신의 습관에 종속된 삶이 너무나 강하게 고착되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거나 또는 자기가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침에 언제 일어나는지, 방은 어떻게 꾸며놓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등에 대해 우리의 습관은 얼마나 큰 역할은 담당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를 들어,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겨가면 마치 자기 정체성의 일부를 잃는 것처럼 느끼며 자신의 삶에서 뭔가를 바꾸는데 주저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를 덜 강하게 느낍니다.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습관(또는 관습)에 결속되어 있습니다. 이는 삶을 결정짓는데 아주 중대한 영향을 제공하는 영역으로서, 습관과 행동양식을 통한 삶이 자신의 근본적 행동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습관적 행동이 이런 식이며 저런 식은 아니다 라고 하는 사실이 운명에서는 전환점들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습관에 따른 삶에서부터 나오는 저항이 영혼의 영역에서부터 나오는 저항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뭔가를 바꾸기가 더욱 어렵게 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신체의 단계가 있습니다. 신체적 단계에서 보면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신체 능력의 영역은 한계의 영역입니다. 비록 최상의 습관, 유연한 영혼, 그리고 상당한 주의력을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신체 능력에 결여가 있다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걸을 때 걸음 길이는 다리의 길이에 따라 결정되는 특정 거리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업을 지켜볼 때, 여러분은 자신의 다리 길이에 따라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거나 무엇을 경험하게 된 일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정확히 만나게 될 그 순간에 어떤 특정한 장소에 다다르게 되어 수 초 또는 수 분 뒤에는 만나지 못했을 그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신체 크기에 따른 특정한 거리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몸의 신체 조건은 카르마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물론 우리가 어떻게 그 신체를 대하게되는가도 이 드라마 안에서 아주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거나, 노인, 젊은이, 성별, 외모, 인상 - 그리고 우리 모두는 거기에 가장 고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체의 단계에서 뭔가를 바꾸고자 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저항을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것이 업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주의력과 자아 존재의 영역에서 자신을 파악해보고 다음의 질문들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진정 내가 존재하고 있는 순간들이란 무엇인가? 나의 자아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전적으로 내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곧 우리는 어떤 한 곳에서부터, 아마도 제한된 관심들을 가지고 왔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의 모든 개인적 동기부여가 자아 영역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가 원한다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인식과 가능한 한의 주의력을 가진 자아 영역이야말로 가장 열려있고 유연한 영역임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다른 영역에서 우리는 더욱 더 많은 한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한계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영혼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 의 원형(原型)은 무한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고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감성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에 동정(同情)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지를 통해 어떤 능력을 익히고 발달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탐구해 볼 때 우리는 이 영혼의 단계에서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전생으로부터의 개인적 업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삶의 영혼의 단계에서 만나게 되는 한계들은 마지막 전생에서의 자신의 자아 인식, 자신의 주의력, 자신의 관심에 따른 결과들입니다. 이번 삶에서 경험하는 아스트랄 체 영역에서의 한계성은, 이전 삶을 통한 자아 활동 존재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억인 것입니다(또는 흔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삶에서 우리가 자아 영역 내에서 열려있고, 자유롭고, 그리고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 것은, 이전 삶에서의 모든 나쁜 그리고 좋은 경험의 흔적들이 현재의 아스트랄 체로 옮겨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성의 영역에서 뭔가를 좋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전생에서 우리 자아 활동의 징표(signature)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의 선율을 느껴보면서 오늘 저녁 다음의 질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생에서 나의 운명을, 나의 전기를 구성한 어떤 억제된 감정이나 기억이 있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 나는 그것을, 내 인생의 선율, 내 영혼의 한계점들이 나에게 어떤 징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것을 만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여러분의 습관들을 관찰하고 탐구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영역 안에는 어떤 흔적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이 질문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이번 삶에서 나의 생명력과 습관의 영역에서 만나게 되는 어떤 한계점들이 내 전생의 아스트랄(영혼) 활동의 흔적은 아닌가?

 그리고 어떤 한계점들과 특정한 형태를 가진 나의 신체를 만나게 되는 방식은 이전 삶을 통해 나의 습관과 행동양식이 정착되면서 나를 이끌고 갔던  방식의 흔적은 아닌가? 

 

 이 연습은 단지 하나의 질문으로서, 심지어 하나의 가정으로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자아 훈련이 작용하는 방식을 인식할 때 이는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자아 훈련은 이러한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여러분은 자아 인식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으며 특정한 과제 또는 발달시키고자하는 특정한 능력에 주의를 집중하며 해나갑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의 의지, 감성, 동기부여, 그리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만약 여느 종류의 자아 훈련을 하고자 할 때, 여러분은 우선 자신의 영혼을 훈련하여야 하는데, 이는 어떤 진척을 이루고자할 때는 여러분 영혼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 수행을 하면서 특정한 능력을 발전시킬 때, 이는 곧 여러분의 습관들을 바꾸고 여러분 삶의 행동양식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양식과 습관이 바뀌면 여러분의 육체적 삶과 신체 상태 또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비록 이 과정이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요.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안한 이러한 자아 훈련 방식을 따를 때 우리는, 아스트랄과 에테르의 영역들을 거쳐 신체적 현실, 신체적 변화에 이르게 되는, 교육학적 원칙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삶은 다음 삶의 교육자입니다. 동일한 순서가 적용됩니다. 자아 영역 안에서의, ‘나’의 힘 영역 안에서의 자기 연대성(engagement)이, 어떻게 나의 아스트랄 체가 발달하게 되며 자아의 힘에 의해 관통되어지게 되는가 하는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나의 인성은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아스트랄적 요소가 더욱 더 인간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내 자아 활동의 흔적들은 거기로 침투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 활동이 더욱 인간적으로 발달할수록, 그것은 더욱 더 나의 행동과 습관의 영역 내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삶을 통한 내 영혼의 끝없는 노력은 다음 생에서 나의 에테르적 구성을 위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오늘 내가 나의 아스트랄 체를 대하는 방식은 현재 삶의 행동양식과 습관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다음 생에서 그것들이 형성될 방식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발달은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진행됩니다. 내면의 온기와 ‘나’의 강렬함에서 출발하여, 아스트랄 영역을 관통하고, 모든 습관의 저항과 함께 에테르 영역을 변형시키며, 마침내 육체적인 것에 다다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삶에서 활동적이고, 두 번째 삶에서 자아 활동의 기억은 아스트랄 영역에 존재하며, 세 번째 삶에서 이 기억은 에테르 영역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신체 내에 이전 세 번 삶들의 결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 순간 우리는 잠깐 동안의 자아 탐구와 자아 경험을 통해서, 우리의 전생들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관찰과 자각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 특성들과 흔적들, 방식들을 자아 경험의 영역 안에서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운명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에서 다섯 번째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멋진 강연장에서 서로같이 만나게 된 사실도 우리 모두 운명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운 좋게도 이렇게 특별한 해에 여기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만나는가, 어떻게 잠을 자는가, 어떤 생각들이 정말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왔는가, 어떤 것은 그러지 않았는가, 등등에 따라서 이겠지요. 어떤 것을 만나고 그리고 어떻게 만나는가가 우리의 주의를 끌고, 우리의 자아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그렇게 이번 모임을 마감하게 됩니다. 신체적 행위를 통해 내가 행한 방식은 다음 생에서 운명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우리가 여기서 만난 것은 전생에서 실제적으로 준비했던 그 운명의 결과인 것입니다. 현 조건들을 만나는 방식이 전체적 운명의 과정을 한 걸음 더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교사는 자신 안에 운명에 따른 다섯 삶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특성들과 기억들을 가진 두 운명체가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교사는 자신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러한 연유에서 그의 특수교육학 강의에서 이를 교육학적 원칙이라 일컫습니다. 자아 훈련과 업의 원칙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 영역에 존재하던 것이 다음 생에서 한 단계 아래의 영역으로 옮겨가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원칙은 또한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도 작용합니다. 교사가 주의력과 온기를 가지고 현재 어떻게 학생을 만나는가 하는 것이 학생의 아스트랄 체를 만들어내고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은 완전한 자아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스스로를 훈련시킬 수 없습니다. 교사는 어떤 의미에서 그 자아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교사의 자아는 학생의 아스트랄 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마찬가지로, 사고, 감성, 그리고 의지의 영역 안에서 교사가 저항(resistance)과 부족(lacks)을 통해 아스트랄 체를 형성하게 된 방식은 학생의 생명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교사가 자기 영혼의 활동들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좋은 또는 좋지 않은 의미에서, 학생의 에테르 체에 전해집니다. 만약 한 아이가 매일, 매달, 매해 조금씩 초조해하거나 주저하기를 한다면, 이는 그 아이의 삶에 행동 습관(양식)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영혼을 운용하는 방식은 학생의 에테르 체에 아주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행동하는 방식, 여러분들 습관대로 행해지는 방식, 특정한 방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 또는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수업 중 잠시 휴식을 가지는 것 등 이 모두는 아이들의 신체 구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까지 교육학적 원칙의 본질에 대한 아주 간단한 개관을 해 보았습니다. 

인간은 매우 유연하지만 구분되어집니다. 그리고 단지 우리가 교사로서 어떤 사람인가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에게, 우리와 함께 일하는 아이들에게, 중대한 교육적 영향을 발휘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잠시나마 숙고해보시기를 희망하며, 내일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으신 분들이 먼 곳에서 오신 줄 알고 있는데, 편한 밤 되시고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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