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 經/淸靜經(Cultivating Stillness)

三 觀 (일심삼관)

namaste123 2010. 2. 4. 04:44






三 觀

假 觀(가관), 中 觀(중관), 空 觀(공관)



















가관(假觀): 중심을 통해 경계를 보되 중심과 경계가 그대로 오롯한 것
중관(中觀): 중심을 세워 그 中에 의지를 두는것 또는, 중심을 통해 자기를 보는 행
공관(空觀): 중심을 통해 근본을 보고, 근본 空에 의지를 두는 것




삼제원융 | 일심삼관 | 일념삼천
일심삼관은 공, 가, 중 세가지의 진리를 한마음 가운데서 원만하게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관(中觀)의 3관이 일념속에 즉성(卽成)됨을 뜻한다. 공관이란 현상계의 일체법은 다 실체가 없는 공이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우리들의 번뇌 또한 그 실체가 없는 공한 것이라고 관하여 마음의 본바탕인 불성(佛性)을 깨닫고자 함을 말한다.
 

또 가관(假觀)이란, 현상계의 차별성에 대한 진리를 달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공의 진리에만 국한해 있으면 이것은 소승나한도(小乘羅漢道)에 불과한 것이다. 즉 공의 원리밖에 모르는 데 떨어진 낙공(落空)의 경지에 불과한 것으로 미완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걸음 다시 더 나아가 중생계와 현상계의 일체법을 달관하고 대승의 진리인 보살도를 성취해야 하는데 이것이 가제(假諦)의 원리를 관찰하는 가관(假觀)인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최후 구경의 진리는 공의 진리와 가(假)의 진리를 별개적으로 체득하는 것이 아니고, 공(空)과 가(假)는 둘인듯 하나이고 하나인듯 둘의 원리를 체득하는 중제(中諦)에 있다. 이 중제야말로 붓다의 구경의가르침인 중도(中道)이며 원만각(圓滿覺)인 것이다. 삼제삼관(三諦三觀)의 진리를 바다의 파도에 비유하여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바다 표면에는 크고 작은 파도가 끝없이 출렁이고 있다.
이와 같은 한없이 많은 파도는 마치 우리들 정신속에 자리잡고 있는 선악간의 온갖 생각, 번뇌와 같고, 현상계의 천차만별의 사상(事象)과도 같다. 따라서 공, 가, 중의 원리에 비교하면 가(假)의 도리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물결이 가라앉았을 때의 잔잔한 바다물을 우리는 생각할 수있고, 그리고 이 잔잔한 바다물이야 말로 바다의 근본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물이 없다면 바다는 이루어질 수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은 바다의 본래 면목이며, 3제 3관의 도리에서 말한다면 공(空)의 도리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고 물결과 물은 둘일 수 없는 것이다. 물이 움직이는 것이 물결이고 물결이 가라앉으면 그것이 바로 바다물이다. 물결을 떼어놓은 바다는 생각할 수 없으니 바다물과 파도는 둘이 아니다. 이것을 수즉파(水卽波) 파즉수(波卽水)라 하며 수파불이(水波不二)인 것이다. 이것이 중제(中諦)의 도로서 이것을 깨닫는 것을 중관(中觀)이라고 한다. 이렇게 일체법을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이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한번 설명하여 보겠다. 

우주만유(宇宙萬有)는 인(因)과 연(緣)의 결합으로 생긴다. 산과 바다가 있고 달과 꽃이 있고 선악이 있고 미추가 있고 희비가 있으며, 각양각색의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이 모두가 인연결합(因緣結合)의 결과로서 이 결합이 분산되면 그것은 멸실된다. 

모든 것이 생멸전변하여 실체가 없는 것으로서, 이것을 공제(空諦)라고 하며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공이라고 하지만 멸하여 없어진 것은 아니고, 의연히 선(善)은 선, 악(惡)은 악, 미(迷)는 미, 각(覺)은 각으로서 그 차별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을 가제(假諦)라고 하며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공의 도리를 깨치는 것이 그대로 가제(假諦)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것을 즉공(卽空) 즉가(卽假)라고 한다. 공과 가의 진리가 어느 쪽이나 완전히 이해되는 것을 중제(中諦)라고 하며, 그러므로 중제의 진리는 공의 진리와 가(假)의 진리 밖에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인 것이다. 

우주만유(宇宙萬有) 삼라만상(森羅萬象) 인생제반(人生諸般)의 사사물물(事事物物) 그 어느것이나 다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인 것이다. 이것을 일경삼매(一境三昧)라고도 한다. 일심삼관(一心三觀)을 3지(智)로 견주어 설명할 수도 있다. 3지는 일체지(一切智), 도종지(道種智),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말한다. 지자대사는 이 3지(智)를 체득하는 선법으로 공, 가, 중 3제(諦)에 의하여 일심삼관법을 세웠는데, 이 3제의 묘리와 삼관법(三觀法)은 천태종의 기본교의며 중요한 수행문인 것이다. 

중국 천태종의 6조 형계담연(荊溪湛然)대사가 지은 시종심요(始終心要)에서「이 삼제(三諦)는 중생이 본래 갖춘 것이요 조작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 진리가 감추어져서 드러나지 않음은 삼혹(三惑)으로 인연한 탓이다. 

무명혹(無明惑)은 법성(法性)을 가리우고 진사혹(塵沙惑)은 화도(化導)를 가리우고 견사혹(見思惑)은 공적한 이치를 가리운다. 그러므로 삼관법(三觀法)을 세워서 3혹(惑)을 깨뜨리고 3지(三智)를 증득하여 3덕(三德)을 이룩한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일심 위에 본래 3제(諦 )의 원리를 갖추고 있는데 3혹(惑)이 가려져서 드러나지 못한다.

3혹(惑)이라 함은 이것을 무명혹(無明惑) 견사혹(見思惑)진사혹(塵沙惑)을 말한다. 이것을 3장(障)이라고도 말한다. 무명혹(無明惑)은 모든 미혹(迷惑)과 번뇌의 근본이 되는 근본무명으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진리를 덮어 가리우는 뿌리깊은 미혹인 것이다. 견사혹(見思惑)의 견혹(見惑)은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말하고 사혹(思惑)은 모든 사물의 진상을 바로 알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그리고 진사혹(塵沙惑)은 티끌과 모래와 같이 한량없이 많은 번뇌를 말한다.

그리하여 공관(空觀)으로 자성이 본래 공적한 이치를 가리우는 견사혹(見思惑)을 깨뜨리고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하여 반야덕(般若德)을 성취하고, 다음으로 가관(假觀)으로 진사혹을 깨뜨리고 도종지(道種智)를 증득하여 해탈덕(解脫德)을 성취한다. 그리고 중도관(中道觀)으로 제법실상을 가리우는 무명혹을 깨뜨리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하여 법신덕(法身德)을 성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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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http://www.edukwan.org

www.cheontae.org/01_cheontae/cheontae002.html?hcode=002_05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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