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E. 프랭클

namaste123 2013. 3. 27. 21:12




          

 














"사람은 어떠한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빅터 E. 프랭클 

 (Viktor Frankl)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 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 생각하라."

 


빅터 E.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로서 윈 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당시 그곳에서 

활약하고 있던 S. 프로이드와 A. 아들에게 사사하였으며, 2차대전중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와 아내 그리고 두 자녀와 함께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처참한 생활을 

하였고, 전후 그때의 체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실존분석> (Existenzanalyse)을 제창하고 

<로고테라피> (Logotherapie)를 창시하였다.


 

히틀러의 수용소에 처음 수감되었을 때에 동료들 중에는 별별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사람과 허약해 보이는 사람, 민첩하기가 다람쥐 같은 사람과 둔하게 보이는 

사람, 배운 사람과 무식한 사람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수용소 생활을 함께 시작하였다.

 

프랭클 박사는 생각하기를 저렇게 민첩한 사람이나 체력이 뛰어나게 좋은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허약하거나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들은 각박한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나 민첩한 사람들이 오히려 먼저 무너지고 허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버티어 나갔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만 여기다가 점차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용소의 처참한 조건에서 견디어 나가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고난에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 

'삶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이웃 동료들을 

돕는 마음을 지닌 사람,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살아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아무리 인간적인 수단이 탁월하고 체력이 좋아도 삶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쉽사리 무너짐을 보게되었다. 빅터 프랭클박사는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수용소 생활이 

끝난 후 정신질환의 치료법을 발전시켰다.

 

"로고테라피"라 불려지는 방법이다. 우리말로 "의미요법"으로 번역되었다. 말하자면 삶의 의미를 

깨닫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정신질환을 치료함에 있어서의 한 기준이 된다는 이론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 빅터 프랭클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강제수용소에서는 모든 상황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평범한 삶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다.

 

저자는 이책에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것은 삶의 의미 찾기라고 말한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미래의 목적, 예를 들면 계획, 하고자 하는 계획, 행동, 근거, 사람 등 다양하다.

 

이런 삶의 의미가, 목적이 없다면 그사람은 무감각, 패배주의에 빠져 죽음을 재촉하거나 삶의 의미 

찾기 조차 지키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지옥같았던 수용소 생활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경험을 추억하며 사랑이란 

감정은 무한한 힘과 삶의 의미가 되고 고통의 순간을 틸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산다는 것는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

 

 

■ 사랑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 

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안에서 실현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곳까지 간다는 것이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이렇게 내면 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 부터의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유머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알려진 대로 그 오떤 상황에서도 

그 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조언을 가져다 준다.

 


■ 진리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의 크고 작든 상관없이 영혼과 의식을 완전히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 고 말할수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을 의미있고 목적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삶의 빼놓을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인생이란 치과 의사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러다보면 어느새 통증은 끝나있다."

 

 

■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수 있다.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Hope)을 잃어버린 자는 불행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은을 잃어버린 갓과 더불어 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로 일어난다.

 



[ 빅터 E. 프랭클의 말 ]

 

■ 성공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 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인생의 의미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 닥치더라도 설령 변할 수 없는 운명에 닥치더라도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서 인간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은, 개인의 비극이 승리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곤경에서 인간이 성취를 일구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 불치의 병이나 수술이 불가능한 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도전을 해야 한다.

 

 

■ 사랑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그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 홀로코스트 신화화 논쟁 ]

 

서구 역사학계의 주류는 홀로코스트 그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희생 규모 추산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설정해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신화화'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유대인으로 < 홀로코스트 산업 >의 저자인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가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사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이교도의 증오의 절정이라는 신념이 선민의식을 

부추기고 팔레스타인 침공에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1996년 레바논 남부 카나마을에 대한 이스라엘군 포격으로 100명이 넘게 숨졌을 때, 이스라엘 

언론인이 "이스라엘은 면책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고 

한 게 그런 인식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을 성서 예언 구현자로 보고 맹목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와 

연결돼 중동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난해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유대인을 학살했다면 자기들 나라의 

영토 일부에 이스라엘이 옮겨가도록 하라"고 말했다. 즉 팔레스타인을 홀로코스트의 속죄양으로 

삼지 말라는 주장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디어 낼 수 있다" 


- 니체 (Friedrich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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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ktor Emil Frankl, MD, PhD (26 March 1905 – 2 September 1997) was an Austrian neurologist 

and psychiatrist as well as a Holocaust survivor. Frankl was the founder of logotherapy, which is a form 

of existential analysis, the "Third Viennese School of Psychotherapy". Wikipedia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82631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빅토르 E. 프랑클 지음, 박현용 옮김/책세상·1만2000원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빅토르 E. 프랑클 지음, 박현용 옮김/책세상·1만2000원

빅토르 프랑클이 쓴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수기>의 초고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라>였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 부모, 아내는 모두 살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의 의미를 긍정하는 심리치료법 ‘로고테라피’를 완성했다.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그가 90살에 내놓은 회상록이다.

어디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가능할까. 프랑클의 아내 틸리는 스페인 무희같이 생동감 넘치는 간호사였다. 임신했지만 포기했다. 유대인이 아기를 가지면 강제수용소로 직행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살려고 발버둥쳤지만 틸리는 결국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숨진 3만4천구 주검 가운데 하나로 발견됐다. 수용소에서 해방된 뒤 그는 밤마다 아내의 간을 누군가 파먹는 꿈을 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준다. 수용소에서 호흡곤란을 겪던 아버지에게 프랑클은 숨겨온 모르핀을 주사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이었다. “그런 가운데에서 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신비로운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고 고백했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미국에 입국 비자 신청도 해 놨다. 그런데 혼자 떠날 수는 없었다, 도살장에 남기로 했다.

그를 살린 건 잃어버린 책의 초고였다. “다시 써야겠다는 의지” 덕이었다. 의미를 붙든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은 선택할 수 있었다. 깡패 출신 어떤 수형자는 일부러 싸움을 벌여 사지에서 프랑클을 구했다. “근본적으로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프랑클은 “강제수용소는 내가 진정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시험대였다”고 회고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