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옛날 일본 이야기(Tales of Old Japan) 중에서,

namaste123 2014. 12. 21. 10:10







"Tales of Old Japan:

Folklore, Fairy Tales, Ghost Stories and Legends of the Samurai"


by Algernon Bertram Freeman-Mitford



미드포드(Midford)란 사람이 쓴 「옛날 일본 이야기」(Tales of Old Japan)라는 책에는 그가 목격한 일본 무사의 할복(切腹)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인용한다.  



하라키리 목격기

<우리들(7인의 외국 대표자)은 일본 檢使役(검사역)의 안내를 받아 儀式이 집행되는 절의 본당에 들어갔다. 그것은 정말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본당은 지붕이 높고 검은 기둥으로 떠받쳐지고 있었다. 천장에는 불교사원 특유의 찬란하게 빛나는 금색의 燈籠(등롱: 

불을 켠 초나 호롱을 담아 내어다 걸 수 있도록 한 기구)과 장식물들이 매달려 있었다.


높은 佛壇(불단) 앞에는, 아름답고 흰 다다미가 깔린 마루가 놓여져 있었는데 땅바닥으로부터 3~4인치 높았고, 여기에 붉은 융단이

덮여져 있었다. 불안과 긴장감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키 겐자부로가 삼베로 만든 예복을 입고서 당당하게 본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나이는 32세, 기품 있는 대장부였다. 한 사람의 가이샤쿠(介錯人)와 세 명의 공무원이 같이 들어왔다.


가이샤쿠는 영어의 사형집행인(Executioner)과는 같은 의미가 아님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이샤쿠는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의

역할로서 많은 경우 사형을 선고당한 사람의 一族이거나 친구로서 兩者(양자) 관계는 사형수와 집행인이라기보다는 주연과 조역의

관계이다.


이 경우, 가이샤쿠는 다키 겐자부로의 門第(문제)이며 검도의 達人(달인)이었기에 이 자리에 뽑혀나온 것이었다. 다키 겐자부로는

가이샤쿠를 왼쪽으로 데리고 조용히 일본의 검사역이 앉은 데로 나아가 인사를 한 다음 외국인 검사역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더욱 깊은 경의를 표하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곧 다키는 할복할 자리에 올라 조용히 威儀(위의)를 갖추고 본당의 佛壇 앞에 두 번 경례하고 나서 佛壇을 등 뒤로 하여 융단 위에

단정하게 앉고 가이샤쿠는 그의 왼쪽에 쪼그리고 앉았다. 곧 세 공무원 중 한 사람이 흰 종이로 싼 短刀(단도:약 25cm)를 사형수에게

내밀었다. 그는 공손히 그 칼을 받아 머리 위로 올리더니 자기 앞에 놓았다.


다키는 거듭 공손하게 절을 한 다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감정이 들어 있었으나 얼굴이나 태도에서는 잘 감지되지 않았다.

'저는 혼자서 무분별하게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고베에서 외국인에 대하여 발포명령을 내렸는데 그가 도망가려는 것을 보고 재차

발포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죄를 지고서 할복합니다. 검사역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번 또 인사를 한 그는 웃옷을 허리띠까지 벗어 상반신을 드러낸 뒤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윗옷의 소매를 무릎

밑에 괴었다. 신분이 높은 일본 무사는 앞으로 넘어지면서 죽어야 명예롭다는 관습이 있다.


그는 천천히 자기 앞에 놓인 단도를 움켜쥐었다. 그는 생각을 집중시켜서 그 칼을 바라보았는데 애정어린 눈초리였다. 그 순간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추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 단도를 왼쪽 배에 깊이 찔러넣고 손잡이를 천천히 오른쪽 腹部로 당기더니

그 칼을 약간 위로 꺾었다.


이 끔직하고도 고통스러운 동작을 계속하는 동안 그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단도를 뺐을 때, 그리하여 앞으로 몸을

뻗으면서 목을 내밀더니 비로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그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때까지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할복장면을 냉철하게 지켜보고 있던 가이샤쿠가 벌떡 일어나더니 하늘을 향해서 칼을 치켜드는가 하는데 어느 새 섬광이 번득이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꽝! 그 소리와 동시에 떨어지는 물건이 있었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그의 머리였다.


죽음과 같은 침묵이 흘렀다. 움직임이 없는 고기덩어리로부터 쿨렁쿨렁 솟구치는 소름끼치는 피소리가 침묵을 깨고 있었다.

가이샤쿠는 깊게 절하더니 미리 준비한 흰 종이로 자신의 피묻은 칼을 닦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피 묻은 단도는 집행의

증거물로서 엄숙하게 바깥으로 실려 나갔다.


그 후 일본측 공무원 두 사람이 외국인들 앞에 오더니 사형집행이 끝났으니 확인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儀式(의식)은 이것으로

끝나고 우리는 그 절을 나왔다.>

   


이 글은 명치유신 직후 고베에 주재했던 외국인이 쓴 것으로서 할복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세밀히 묘사한 것이다. 이 글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통 인사)가 영어로 쓴 '武士道'란 책에 실려 있다.


일본의 무사들은 자신의 과오를 책임질 때 이런 할복으로 대신했다. 죽을 때까지도 위엄과 예절을 지키려고 했던 일본 무사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다. 무사도의 핵심은 ' 어떻게 죽는가'란 주제에 대한 탐구였다고 한다.

 

죽음의 美學(미학)이란 시각으로 할복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한 사회의 지도층이 어떤 자세로써 공무를 수행해야 하느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면도 있다. 지금의 일본인들 중 특히 지도층 인사들은 이런 할복을 감행한 사람들의 정신적 후예란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명예, 철저함,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할복의 전통을 가진 지도층, 그런 윤리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오늘의 일본을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계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약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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