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에 대한 애정을 차츰 깊게 하려면 우선 두가지 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하나는 석굴암의 전실(前室)과 비도(扉道) 그리고 주실(主室)안에 조각된 조각상들의 대상과 그 미적 가치, 불교 경전상의 의미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석굴암의 건축적 구조와 여러 조각상의 전체적인 배치에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석굴암의 부조상과 감실상에 대하여는 그 대상과 미적 가치를 손쉽게 알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지만 석굴암의 건축적 구조와 전체적인 배치계획의 일단을 살펴보면 석굴암의 건축구조에 대한 중요한 단서는 놀랍게도 이국(異國)의 젊은 건축기사인 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가 제공하고 있다.
요네다는 1932년 일본대학 전문학부 건축과를 졸업하고 이듬해부터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촉탁으로 한국의 고건축 측량에 몰두 하였다고 한다.
후지따 교수의 조수로 성불사 개수공사에 참여한 이래 낭산 아래의 사천왕사, 천군동 석탑, 평양 청암리사지, 부여 정림사지, 그리고 불국사와 석굴암의 측량을 도맡았고, 백제 부소산성을 실측하던 중 장티푸스에 걸려 불과 35세의 젊은 때인 1942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요네다는 죽기 3년전, 자신이 7년간 측량한 결과를 종합하여 조선상대 가람축조의 통일적인 기준과 조영계획에 대하여 탐구하였고, 그 결과 '다보탑의 측량관계',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의장계획', '불국사의 조영계획', '조선상대 건축에 나타난 천문사상' 등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한국 고건축의 수리적 관계에 대단히 주목할 만한 견해들을 밝힌 바 있다.
요네다가 세상을 떠난 후 유고를 모아 펴낸 '조선상대건축의 연구'(우리나라에서는 木壽 신영훈님이 "한국상대건축의 연구"라는 제하의 한정판 번역본이 있다. 1963년 한국문화사 출판)는 석굴암, 불국사의 연구는 물론이고 한국 고대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고전이다. 요네다의 책에 실린 '경주 석굴암의 조영계획'은 석굴암의 건축구조와 조영물 배치 나아가 그 과학적 신비를 푸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의 간략한 위 논문를 몇번이나 거듭해서 읽어가면 갈수록 더욱 깊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고, 그의 더없는 열정과 비상한 상상, 놀라운 재구성에는 오직 부러움과 감탄이 더할 뿐이다. 요네다는 석굴 조영계획을 찾아가는 작업을 조성 당시의 통일신라의 제작자가 사용했을 자(尺)의 길이를 밝히는 데서 시작하였다. 그는 불국사와 석굴암에 대한 자신의 측량과 그 전에 있었던 보수공사의 측량결과서에 나타난 여러 수치들을 종합하여 당시의 제작자가 사용했던 자는 지금의 곡척(曲尺, 30.3cm)이 아니라 0.98곡척(29.7cm)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 0.98곡척을 당척(唐尺)이라 하여 스스로 이 당척을 다시 만들어 그것으로 석굴암을 다시 측량해 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석굴의 평면계획을 보면, 주실은 반지름 12자의 완전한 원(圓)이다. 지금의 석굴암 주실은 약간 일그러진 원의 형태이나 현존하는 주실 입구가 12자인 점과 그것이 주실의 원에 내접하는 육각형의 한 변에 해당하는 점에 미루어 보아 완전한 원으로 계획된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실의 대좌는 이 원의 중심에 놓인 것이 아니라 약간 뒤로 물러나 있는데, 대좌의 아랫부분 8각형 앞면은 주실을 이루는 원의 횡직경선상(橫直徑線上)에 일치하고, 이 8각형 앞면의 중심점은 주실 입구(12자)를 밑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그렸을 때 그 꼭지점에 해당하며, 동시에 주실을 이루는 원의 중심이기도 하다.
석굴의 입면계획에 대해서는, 석실의 벽면에 새겨진 조각상들의 받침돌 아랫변에서 조각상들의 윗부분에 이어진 벽판석의 윗변까지도 12자인데, 이는 주실의 반지름과 일치하는 것이다. 벽면 조각상 위 벽판석의 윗변에서 그 상단 감실의 높이를 더하면 이는 17.25자가 되는데, 이 수치는 가로를 벽면에서 주실 원의 중심까지로 하고, 세로를 벽면 아랫부분에서 벽판석 윗변까지로 한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이다.
그리고 감실의 이맛돌로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다시 12자로서 굴의 반지름과 일치한다. 이러한 요소를 종합하여 석굴형태를 계획적 기법으로 요약한다면, 석굴 평면의 반지름으로 구성되는 정방형의 대각선의 길이를 원주상에서 수직으로 잡고, 이 높이에 위치하는 평면원의 중심으로 하여 위쪽으로 반지름을 이루도록 그어가면 반구형이 되고 그 선은 궁융천장의 구성형태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석실의 천정에 해당하는 궁융면은 감실 이맛돌 높이에서 24자를 직경으로 하는 원둘레에 두고, 석판 열개로 구성되는 원주대로 맞추어져 있고, 석판의 이음새 선의 연장은 궁융 원심(圓心)에 집중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본존상은, 석실의 평면에서 본존상의 총 높이는 17자인데 이는 감실의 이맛돌 높이와 일치하는 것으로서, 앞서 본 바와 같이 석실을 구성하는 원의 반지름을 한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를 그 높이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본존불의 얼굴너비는 2.2자, 가슴폭은 4.4자, 어깨폭은 6.6자, 결가부좌한 양무릎의 너비는 8.8자이다.
즉 얼굴 : 가슴 : 어깨 : 무릎 = 1 : 2 : 3 : 4의 비율로 구성된 것이고, 이 부분의 기준이 된 1.1자란 본존불 자체의 총 높이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러한 요네다의 측량결과는 실로 정교하고도 놀라운 것이며, 석굴암에 적용된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가 바로 우리에게 석굴암의 아름다움의 근원을 이루는 것 중 중요한 하나임이 분명할 것이다.
본존불의 1:2:3:4의 비율을 이루는 기본단위인 1.1자란 바로 본존불의 총높이의 10분의 1인 점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궁금점이 많지만, 이것이 바로 로마시대의 신전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서"에서 말하는 균제비례(Symmetry)의 적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의 선조가 비트루비우스의 균제비례를 여기에 적용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의 비트루비우스가 알아낸 안정감과 아름다움의 비율을 우리의 선조들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를 실제 건축에 철저히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10분의 1이란 비율은 바로 인체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과 안정감을 주는 비율이다. 우리의 얼굴(턱에서 이마끝까지)은 신체의 10분의 1이고, 손바닥(손목선에서 중지 아랫선까지)은 팔길이의 10분의 1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얼굴이 길다거나 조금 짧게 느껴진다든지, 어떤 사람의 손바닥이 길다거나 짧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의 팔목길이에 비교한 우리 안목의 자연스러운 판단이며, 그 판단기준은 바로 10분의 1이라는 간단한 비례이다.
그러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안정감이 주는 심정적 동감상태의 하나가 아닐까요)의 감정이 바로 석굴암의 본존불의 크기 결정과 구성적 비례관계에서도 어김없이 구현되어 있는 것은 실로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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