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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영자, 화가 장경희 부부가 사는법

namaste123 2011. 9. 20. 13:00




 도예가 김영자, 화가 장경희 부부가 사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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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받으며 화가 장경희와 도예가 김영자 부부를 만나기 위해 충남 서산의 도적골로 향했다. 도적골은 서산 읍내에서 조금 벗어난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와 집 앞에 다다르니 부부가 마당을 가로지르며 취재진을 맞는다. 이들 곁에서 개와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낯선이를 반긴다. 마당 너머로 소박한 생활채와 작업장, 봄볕을 느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의자가 보인다. 어느 것 하나 큰돈 들여 구입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누추하기는커녕 인물과 집에 수채화 물감을 뿌린 것처럼 투명하고 순수해 보인다.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10년 전이었다. 읍내에서 미술학원을 하던 부부는 학원을 정리하고 도적골로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던 이곳에 만능 재주꾼이 도착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남편 장경희씨는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연결해 배수구를 연결하고 난로를 설치해 집을 지었다. 이후 근처에서 나무를 구해와 쓱싹쓱싹 대패질을 하고 망치를 몇 번 휘두르더니 금세 식탁을 만들어냈다. 이 집에 있는 식탁, 책장, 옷장 등은 모두 남편의 손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살면서 공사장, 광부일, 논일 등을 거쳤어유. 뭐, 이거 만드는 게 어려운 거라고유.” 남편은 겸손하게 말하지만 아내는 “(재주꾼인) 남편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올 생각도, 이렇게 오래 생활할 수도 없었을 것 같아요”라며 남편을 치켜세운다.




남편이 다양한 일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다 보니 남편은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일 정도다. 중학교 등록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던 부모는 그를 학교 대신 동네 서당으로 보냈다. “서당에 가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그리기 바빴지유. 그러다가 열여섯 살에 작은아버지가 계신 인천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공사장 일을 하면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유.”인천에서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던 그는 이후 그림을 가르쳐줄 스승을 찾아 태백으로 향했다. ‘황재형’이라는 화가의 이름 석 자만 알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스승을 만났지만 그는 쉽사리 붓을 드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광부를 그리는 분이셨는데,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기 전에 광산에 들어가서 일부터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4년간은 그림을 그리는 법보다는 그리는 자세를 배운거지요.”


광부의 삶을 담기 위해 광부가 된 스승을 보면서 땀방울이 배어 있는 예술에 매료된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갯벌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인 농업에 종사하며 비닐하우스 한편에 소박하게나마 화실을 꾸몄다. 말이 화실이지 비닐하우스 구석에서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붓을 들고 작업하는 작은 공간일 뿐이었다. ‘깡촌’에서 자라나서 이곳저곳 다니며 스스로 밥벌이를 해온 남편과 달리 아내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 그녀는 제재소집 딸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고향은 충남 서산이었지만 당시 응접실이 있을 정도로 서울 부잣집 못지않은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화여대 도예과에 진학한 후에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지만 집에서는 외동딸인 그녀가 가족 곁으로 돌아와 화실을 열기를 바랐다. 그때, 그녀 어머니의 눈에 지금의 남편이 들어왔다. 당시 그는 지인의 권유로 학생이 달랑 한 명뿐인 화실을 꾸리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건물의 주인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주인아주머니가 뒤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더라니까유. 커피를 매일 한두 잔씩 타주는 거예유.(웃음)”


그 당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학원에 다니는 딸 김영자씨가 설날을 맞아 시골로 내려왔다.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평소에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며 만나보라고 성화를 부린 어머니였다. “어쩌다 보니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가게 됐어요. 그림을 봤는데 참 힘차더라고요. 그림이 좋으니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였어요. 환경도 중요하지 않아 보이고요.”이 남자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짐을 싸서 고향에 돌아오리라 결심했다. 함께 공방을 차린 이들은 자연스레 연인이 됐고,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 도도하기로 소문난 이대 나온 딸이 초등학교만 나온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집안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이게 무슨 망신이냐’는 다소 거친 말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두 사람을 소개해준 어머니는 머쓱해졌다. “사람들이 반대하니까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유. ‘그림을 하도 당차게 그려서 전문대는 나온 줄 알았지’라고.(웃음) 제가 인사를 하러 갔는디 아버지는 제게서 등을 돌려 앉으시고…. 그래도 꾸준히 지켜봐준 어머니 덕으로 어렵사리 아버님의 허락을 얻어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지유.”


"전 이렇게 시골에서 사는 게 참 좋아요. 어릴 때 친척집에 가면 구들이 있는 아궁이에서 피어나는 소나무 연기와 황토집 냄새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때부터 전 이런 생활을 꿈꿨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결혼한 지 20년째. 부부는 지금까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누리며 살아왔다. 특히 도적골로 이사 와서 10년간은 슈퍼에 가듯 산과 바다로 나갔다. “남편은 어디에 낙지, 맛조개, 게가 숨어 있는지 알아요. 갯벌에 뚫린 구멍의 크기가 다 다르다던데, 신기하죠. 갯벌에 들어가서 한 삽을 뜨면 거기에 먹을 것이 딸려 나와요.(웃음)”이렇게 남편이 바다와 산에서 식재료를 구하고, 아내가 저장의 지혜를 발휘하면 일 년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확보된다. 철따라 고사리, 칡뿌리, 머루, 다래 등을 따기도 한다. “부모를 닮아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을 줄 알아요. 자연은 아이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죠. 예전에는 저희 집에 고라니가 있었거든요. 어미 잃은 아기 고라니를 집에서 우유를 먹이며 키웠죠. 그 고라니가 송아지만 해졌을 때 아들 녀석이 고라니를 데리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갔어요. 그런데 밤이 어두워지도록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걱정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고라니와 함께 아이가 들어오더라고요. 아들이 하는 말이 낙엽에 앉으니까 푹신푹신하더래요. 볕도 좋고요. 그 분위기를 즐기다가 깜박 잠이 들었고, 고라니도 옆에서 잤다고 하더라고요.”


부부는 아들의 말을 듣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사는 법, 인생을 즐기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 영어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것보다 더 뿌듯하단다. 이들은 공부보다 자연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저희 부부는 아이 공부에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예전에 한 번 말을 꺼냈던 적은 있어요. 아무래도 저는 대학을 나왔잖아요. 아이들한테 ‘그래도 대학이라는 곳을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니’라고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대뜸 ‘아빠는 대학 안 나와도 행복하게 살잖아요’라고 답하더라고요. 할 말이 없었어요.(웃음)”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도, 가난해도, 남과 경쟁하지 않아도 행복한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스펙’에 집착하지 않는다. 중학교 졸업 후 큰아이는 가야금 전공으로 예고에 들어갔지만 이내 자퇴를 했다. 사교육을 받는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고 한다. 둘째 아이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다. 그리곤 스스로 공부했다. “공부는 할 때 되면 알아서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책을 펼쳐들더라고요. 결국 둘 다 대학에 들어갔죠. 큰애는 가야금 전공, 둘째는 건축을 전공하고 있어요. 저희가 도와주는 건 없어요. 다들 장학금 받아서 자기들이 생활하는 거죠.”울 사람들이 보면 거의 방치에 가까운 교육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에게는 이들만의 방법이 있다. 부부는 아이들과 농사짓고, 산에 가서 나무하고, 책 읽고 토론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도 빚었다. 어찌 보면 집에서 진행하는 대안학교였던 셈이다.



“우리 아이들은 즐길 줄 알아요. 예전에는 저희 집에 고라니가 있었거든요. 어미 잃은 아기 고라니를 집에서 우유를 먹이며 키웠죠. 그 고라니가 송아지만 해졌을 때 아들 녀석이 고라니를 데리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갔어요. 아들이 하는 말이 낙엽에 앉으니까 푹신푹신하더래요. 볕도 좋고요. 그 분위기를 즐기다가 깜박 잠이 들었고, 고라니도 그 옆에서 잤다고 하더라고요”




자연인, 부부로서의 삶을 실컷 구경하자 이들의 예술가로서의 삶도 궁금해졌다.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아내의 도자기 공방으로 들어갔다. 겨우내 만들어두었다가 봄에 구워낼 그릇들이 가득한 남편 작업실에 비해 아내의 작업실은 다소 소박하다. “저는 그냥 집에서 쓸 수 있는 그릇들을 만드는 걸로 족해요. 가끔 그룹전에 참가하기는 하지만 개인전을 할 생각은 없어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짧은 말이지만 그녀 생각이 충분히 드러난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 튀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그녀에게, 그들 부부에게 맞는 가장 행복한 삶이다. “전 이렇게 사는 게 참 좋아요. 어릴 때 친척집에 가면 구들이 있는 아궁이에서 피어나는 소나무 연기와 황토집 냄새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때부터 전 이런 생활을 꿈꿨을지도 모르죠.”옆에서 보기에 그들 부부는 가진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진 게 참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게 없는 것을 욕심내지 않는다는 건 그들에게 결핍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고 큰 욕심 없이 이것들을 토대로 살아갈 수 있기에, 그들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자료출처_우먼센스
취재ㅣ 박은혜 기자 
사진ㅣ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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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도적골 작업실
South Korea Chungcheongnam-do Seosan-si Daesan-eup Unsan-ri 769-4+82 41-663-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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