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Rudolf Steiner (루돌프 슈타이너)

namaste123 2011. 6. 10. 03:57






                                                        Rudolf Steiner (루돌프 슈타이너)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 박사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人智學; Anthroposophy)의 창시자로, 괴테아눔(Goetheanum)의 창설자로, 스위스 바셀 근처 도르나하에 있는 자유 정신과학대학의 창립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가난한 철도공무원의 아들로 1861년2월27일 당시 오스트리아에 속하였던 변방 지역 크랄예베츠에서 태어났고 그 후에는 오스트리아 여러 도시에서성장하였다. 그는 비엔나 공대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였고 부전공으로 문학, 철학, 역사학도 공부하였다. (1879-1883)

그는 대학시절 21살의 나이에 이미 요셉 큐르쉬너( Joseph Kuerschner) 교수의 
추천으로 괴테의 여러 작품(특히 괴테의 자연과학작품들)들을 큐르쉬너의 독일민족
문학 대전집에 출간하는 일들을 하였으며, 비엔나에서는 한 가정의 가정교사로도 
일하였다. 그리고 대학시절의 경험들을 통하여 후에는 독일 바이마르의 
괴테-쉴러 박물관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1890-1897).

 이 시기에 그는 "괴테의 세계관에 대한 인식이론의 기본"을 이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살아있는 것의 현상'을 위한 
괴테 관찰법의 학문적인 토대를 만들어 놓게 되었다. 1891년에 그는 독일 로스톡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수여 받았고 
당시의 논문 내용은 후에 "진리와 과학(학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작품은 나중에 슈타이너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자유의 철학"(1894)을 만들어내는 전초가 되었다.이렇게 바이마르에서 지내는 시기에 수많은 철학과 
철학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게 되었으며 1894년에"자유의 철학, - 현대적인 세계관의 요강"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주로 정신과학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괴테의 "순수 인식학", "원초형상"을 기반으로
하여 슈타이너는 새로운 유기체적인 세계에 대한 연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를 통하여 그는 "순수한 사고 안에서의
활동하는 자아"에 대한 통찰력의 터득을 이룩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그는 인간과 세계에의 닫혀진 면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준비하게 하였다. 

또 이 시기에 그는 후리드리히 니체(Freidrich Nietsche)와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에 관한 저서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1897년 루돌프 슈타이너는 베를린에서 오토 에리히 하르트레벤(Otto Erich hartleben)과 함께 주간지 "문학을 위한 잡지(Magazin)"를 인수하여 출판하면서 활동적인 일들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리브크네히트가 (Liebknecht) 창립한 베를린 
노동자학교에서 교육을 하였다.(1899-1904).

1901년부터 슈타이너는 초기에는 주로 신지학(神智學 :Theosophy) 단체 안에서 강연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02년에는
독일신지학회를 창립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는데 그의 추종자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과학연구에 대한 결과들을 주로 강연하였다. 1913년에는 신지학회에서 나오게 되고 그 후 인지학회를 창립하게 
되는데 이것은 슈타이너의 서양적인 정신삶과 기독교문화에 대한 그의 자세가 결국 동양의 영향을 받은 (인도철학 등) 
신지학의 관계와 결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인지학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이는 동양적인 신지학의 비교(秘敎)와 동시에 기독교 문화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인간학이다.


이러한 학문적인 작업에 더해서 예술적인 작업이 첨가되게 된다. 1910년부터 1913년 사이에 루돌프 슈타이너는 네 개의 
'신비드라마'를 썼는데, 이 안에서는 인간 안에서의 정신(spirit)적인 그리고 영혼(soul)적인 과정들이 무대 위에 연속상
(連續像)으로 표현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 뮨헨에서 공연 될 때에 인지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언어조형", 무대예술과 
미술들이 발전되어 나왔다. 여기에 첨가적으로 새로운 동작예술인 오이리트미가 생겨나왔고 이는 오늘날 아주 중요한 
교육적인 과제와 치료적인 과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이리트미의 탄생에는 마리 슈타이너- 씨버르스 부인이 (부인을 사별한 슈타이너의 두 번째 부인) 아주 큰 공헌을 하였다. 이때에 마리와 함께 베를린에서 출판사를 창설하기도 하였다. 


예술활동과 강연활동을 보존하기 위하여 스위스 도르나하의 동산에 루돌프 슈타이너의 설계에 의하여 "쌍돔"형식의 
건축물이 탄생되었다. 슈타이너는 이 건축물을 괴테아눔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인지학을 위하여 괴테의 작품들이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이 건축물이 건립되면서 건축예술의 새로운 장르가 탄생되었고 그 뿐 
아니라 조각예술과 그 외의 수공예술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예술들을 보여주고 스스로 작업에 참여하기 
위하여 슈타이너는 1914년 도르나하로 이주하게 된다.


인간의 본질과 사회 삼구조체로서의 사회유기체의 새로운 연구결과는 슈타이너에게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고 
이는 바로 삶의 현실 안에서 정신과학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교육예술'안에서 새로운 
자극으로서의 학교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때에 그의 교육학을 시작하는 때가 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자유 발도르프학교였다. 이는 슈투트가르트에 있던 발도르프-아스토리아 담배회사의 명칭에서 
시작되었고 이때에 이 회사의 사장 에밀 몰트(Emil Molt)의 후원으로 담배회사 직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이 학교는 최초의 통합학교로서 대학가기 전의 모든 학년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학교였다. 


삶의 실제 안에서의 정신과학 연구 결과의 적용은 그 후로 의학과 약학에 까지 발전하여 제약회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병원, 요양원 그리고 정신지체 장애 아동을 위한 치유 교육 시설 등이 설립되었다. 또한 건강한 농사를 위하여 
생명-역동 농법을 개발하여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모든 활동을 위하여 슈타이너는 전문교육코스 안에서 
정신과학적인 토대와 실질적인 활용 방법들을 강연하였다.


1923년 크리스마스에는 "일반인지학 협회"를 창립하여 세계적인 협회로 정립시켰다. 그는 이 협회를 연구의 핵심으로 
하는 자유정신과학대학으로 발전시켰고 이 대학은 순수히 협회회원의 회비와 찬조금으로 유지가 되었다. 


1922년 송년 밤 방화에 의하여 괴테아눔은 불에 탔지만 슈타이너의 설계에 의하여 두 번째 괴테아눔이 
다시 건립되었다. 이 두 번째 괴테아눔이 활발히 건립되던 중인 1925년3월30일에 슈타이너는 그의 삶으로부터 
떠나게 되었다.그의 자서전 "나의 삶의 여정"(1925)에서는 그의 유일하고 우주적으로 천재적인 인격(개성)에 대한 
과정들이 인상적인 상으로서 표현되고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매우 많은 저작물들을 남겨 놓았다. 그의 저서들과 논문들은 약 50 권의 전집으로 출판되었으며, 
그의 6000 회 이상의 강연들은 녹취를 통하여 250권이 넘는 전집으로 출판되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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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aldorf.or.kr/rudolfS-al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