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Self-Improvement

의산야화(醫山夜話): 질병과 성격

namaste123 2009. 8. 11. 03:29

正見網 (정견망)】







“선생님! 저는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선하게 대하는 것 이라는 간단한 도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마사(Martha)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총명하고 능력이 있으며 성취욕이 강한, 건강하고 정력적인 사람이다. 마치 삶의 그 무엇도 그녀를 가로 막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것은 완벽하게 계획되어 있는데 심지어 아이를 낳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조물주는 마치 그녀에게 특별히 관대한 것 같았고 적어도 그녀 스스로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다. 


일주일 전, 마사는 의사로부터 한 장의 진단서를 받게 되었다. 바로 유방암 말기라는 진단으로 즉각 수술을 통해 한쪽 유방을 제거해야 한다는 통보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 막 42세로 접어들 시기였다. 


과거 몇 년 간 마사는 두통, 복통 등의 질환으로 종종 나를 찾아왔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우리 한의원에서 만큼은 더 이상 자신이 강한 것처럼 꾸밀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 나를 찾아온 이유는 마음속 괴로움과 앞으로 닥칠 예기치 못했던 일들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진료소에 왔는데 마치 정신이 이미 무너질 지경이었다. 의사로서 나는 암으로 사망하는 것이 아주 어렵긴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암진단을 받은 후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때부터 환자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길흉을 예측할 수도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마사는 내게 말했다. “처음 진단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알린 사람은 바로 언니였어요. 왜냐하면 그녀만이 우리 집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언니에게 부탁해서 엄마한테는 이 소식을 나중에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엄마의 감정이 안정된 후 며칠이 지난 후에 제게 전화를 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머니는 이태리 사람인데, 아시다시피 이태리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하답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이태리 사람으로 혹은 갑작스런 충격을 받으면 눈물부터 흘리면서 주변의 모든 이웃들에게 울면서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 할 겁니다. 


제 남편은 좋은 사람이며 아주 착하고 아이들에게는 아주 인내심이 강하지만 유일한 약점이라면 그 어떤 나쁜 소식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남편은 완전히 제 정서의 영향을 받는데 제가 기쁘면 자기도 기뻐하고 제가 우울하면 아주 슬퍼합니다. 만약 제가 지금 암에 걸린 것을 안다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거고 도리어 제가 남편을 돌보고 위로해야 할 겁니다. 


마사는 아주 침울해보였다. 날짜를 꼽아보니 이제 겨우 일주일 밖에 안 되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까지도 그녀로 인해 근심에 휩싸였다. 만약 암에 걸린 사람이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두들 그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구체적인 문제들을 모두 깔끔하게 처리하고 가장 좋은 방안을 내놓아 정확한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 중에서 가장 능력있고 강한 그녀가 도움이 필요하며 이렇게 약자의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한 끝에 물었다. 

“당신은 암이 발생한 원인이 뭐라고 보세요?” 


“화학식품, 깨끗하지 못한 물, 대기오염, 비닐제품, 육류 중의 항생제 성분 등등인 것 같아요, 저는 현대과학과 공업오염, 환경과 생

태계 파괴의 전형적인 희생자예요”라며 분개하며 대답했다. 



“가족력이나 유전은 어떻습니까? 개인의 좋지 않은 생활습관이나 비정상적인 생활방식은요? 왜 똑같은 환경 속에 사는데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걸리지 않을까요?” 


그녀는 침묵했다. 


“마사, 전에 암 환자의 심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아주 흥미 있는 과학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어요. 조사결과에 따르면 암 환자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좀처럼 다른 사람의 잘못을 관용하지 않으며 자신이 피해 본 것은 오래 기억한다는 겁니다. 심한 경우는 무덤 속까지 가져갑니다. 또 물건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하고 하나도 버리려고 하지 않고……” 


마사는 눈을 크게 뜨면서 “전번에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남편과 크게 싸운 적이 있어요.”라고 놀란 듯이 말했다. 암은 비록 육신에서 발생하지만 사실 주변의 일체 요소들에 모두 이런 요소가 있다. 눈을 부릅뜨고 다른 사람을 관용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매듭, 저런 매듭으로 되어 부지불식간에 육체적인 병변으로 자라는 것이다. 


“오 세상에! 화학요법으로는 이렇게 많은 문제들을 치유할 수 없을 텐데!”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마사가 자신의 잘못을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분분히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왔다.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했으며 먹을 것을 사오고 밥을 하며 세탁, 청소를 하는 등등을 분담하여 실제적인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다. 이 모든 도움을 준 것은 공교롭게도 마사가 이전에 사소한 문제로 용서하지 못하고 영원히 보지 않으려 했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그녀가 가장 곤란한 때에 도움을 주었으며 그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싶게 정서가 격동되곤 했던 마사의 어머니도 평상심을 잘 유지했으며 전화통화에서도 시끄럽게 울지 않았다. 도리어 조용히 그녀의 병실에 와서는 꽃, 음식과 함께 애정이 충만된 한 장의 쪽지를 남겨두고는 곧 떠나갔다. 


환경이 변했고 이때가 바로 그녀가 진정으로 타인들의 선량함에 감동을 받은 때였다. 원래 이 모든 것은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던 일이 아니었다. 암치료라는 길고 고통스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질병 자체 때문에 죽는다기 보다는 치료과정에서 사망한다. 환자들을 특히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의사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치료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마사는 의사마다 각기 다른 10여 가지 이론을 듣고는 치료를 포기하고 싶었고 믿음을 잃게 되었다. 


“선생님! 혹시 마라톤 해보신 적 있으세요?”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아니요.” 나는 도대체 그녀가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의아했다. 


“출발선상에서는 친구, 가족, 지지자들이 당신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응원하고 격려해주면서 음식을 제공합니다. 그들의 사랑과 격려로 인해 곧바로 출발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일단 달리기를 시작한 후에는 당신은 곧 혼자가 되며 피곤과 갈증도 느끼게 됩니다. 잠시 멈춰 쉬고 싶고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 같으며 주변 사람들도 당신을 돕지 않습니다. 


화학요법 중에 사람들은 단지 제 머리카락이 빠진 것만을 보았지만 그러나 제가 겪은 과정은 아마 누구도 모를 겁니다. 그렇게 독한 화학약물이 내 몸 각 세포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지를. 저는 어떨 때 정말이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며, 지탱해 나갈 수 없고 기력이 다했다고 느꼈습니다. 도착지에는 친지들이 초조하게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끝까지 버텨내고 싶지만 눈앞의 일분 일초는 모두 이를 악무는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겉보기에도 더 늙고 초라해 보였다. 옷도 남루해보였고 완전히 지쳐보였다. 


“암에 걸린 후에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세요?” 내가 물었다. 


“왜 하필 나일까? 하필이면 왜 내가 이 병에 걸렸을까?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그래서 해답은 얻으셨나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저는 아주 강해요. 그래서 하느님이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신 것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무너졌을 테니까요.” 그녀가 대답했다. 


“정말로 질병이 사람들의 감당능력에 따라 배치된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다시 묻자 그녀는 아무 말도 못했다. 


“선생님! 어제 병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저는 아주 예쁜 여자 아이를 보았어요. 특히 길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이 너무 부럽더군요. 저는 그녀가 차에서 내릴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목발을 짚고 내리는 것을 본 후에야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하늘을 원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머리가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운명을 탓하기만 했지 하늘이 제게 얼마나 자비로운지는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분명 예전에 많고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처지에 빠진 것이 아닐까요? 제 생각이 맞나요?” 


“글쎄요.” 



나는 그녀의 내심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암에 걸린 것에 대해 하늘을 탓하고 원망하면서 불공평하다고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니를 낳았을 때 어머니는 겨우 열아홉이었고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둘째인 저를 낳았어요. 당시 그녀는 엄마라기보다는 우리 자매를 ‘장난감’처럼 여기는 덩치 큰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젖을 먹이면서 다른 한편 이유식을 먹곤 했지요. 기분이 좋을 때면 우리에게 쇼윈도에 전시된 인형처럼 옷을 입혔고, 기분이 나쁠 때면 아주 끔찍했습니다. …… 


아버진 군인이셨어요. 그래서 저흰 아버지를 따라 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적어도 20~30군데 학교를 옮겨 다닌 것 같아요. 10여 개 도시를 옮겨 다녔고 이사도 여러 차례 했어요. 어머니는 이사를 밥 먹듯이 했고 심지어 아침에 이사를 간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저녁에 다른 곳을 찾아간 적도 있었답니다. 결국 저는 친구들을 오래 사귈 수 없었고 사귀자마자 곧바로 헤어져야 했던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줄곧 엄마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마사는 자신이 암에 걸린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어 했다. 또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및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나누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언니인 안나(Anna)는 아주 친근하고 자기주장도 강하지 않아요. 그녀는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던 생활양식을 즐기는 것 같아요. 사실 그녀는 어머니의 집시 같은 생활방식에 습관이 되어서 자신의 소지품을 담은 작은 여행용 가방을 하나 가지고 다녔어요. 그리하여 이사를 갈 때가 되면 어디를 가던지 금새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니와는 정반대로 물건 수집을 좋아했어요. 심지어 어릴 때 만든 나비모양 리본도 여지껏 간직하고 있을 정도랍니다. 제가 물건을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후에는 수십 개의 상자에 일련번호를 붙여서 관리했고 엄마도 내 짐이 너무 많아서 이사하기가 힘들게 되자 더 이상 이사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암에 걸린 후에야 저는 마침내 엄마와 함께 얘기할 적당한 기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과 달리 마치 제가 엄마 같고 그녀는 아이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어머니는 ‘마사! 알고 있니? 엄마는 네게 이런 병이 생긴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단다. 사실 나는 네게 이런 일이 발생할줄 이미 알고 있었단다.’ 순간 제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고 아득해졌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암에 걸릴 줄 알고 있었다고요? 가족 중에 누가 암에 걸린 사람이 있나요?’ 조급하게 물으면서 저는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러면 빨리 언니한테도 유방암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세요.’” 


“가족력이 아니라 너 스스로 얻은 거란다.” 


“저는 분노에 찬 눈초리로 어머니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진정한 엄마는 없었고 이 사람은 그저 베이비 시터에 불과해!’라고” 


“너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고 관용이라곤 전혀 없단다. 네 요구는 너무 높아서 실현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살기가 아주 힘든거야.……라는 엄마의 말에 저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저는 21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어머닌 그때 초등학교 수학도 할 줄 몰랐어요. 또 저는 아이들을 책임지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줄곧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결혼도 미뤘단 말이예요.’” 



“제가 엄마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말하자 엄마도 즉시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곤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표정으로, 자애로운 어머니의 눈초리로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곤 ‘마사!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엄마는 결코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너를 자랑스럽게 여겨왔단다. 나는 항상 네게 배울려고 해왔으며, 네가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현명하고 이지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을 보고 정말로 너를 흠모해왔단다. 


외할머니가 교육을 받지 못해서 엄마 역시 교육을 많이 받진 못했지만 나는 항상 네게 좋은 교육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단다. 매번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갈 때면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바로 좋은 학교였단다. 어떤 때는 좋은 학교와, 더 좋은 선생님을 찾기 위해서 같은 도시에서도 여러 번 이사를 다닌 적도 있단다. 이게 엄마가 그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된 원인이란다. 나는 미장원이나 세탁소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다닐지라도 너희들이 학교다니기 편리하도록 기어이 학교 가까이 이사갈 것을 고집했었다.……” 


“저는 어머니 말씀에 놀라 아무 말도 못했어요. ‘뭐라고요? 저를 위해서 일주일도 못가서 학교를 바꿨다고요? 제가 한 학기도 같은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고 시험을 치를 때면 스스로 얼마나 바보같이 느껴졌는지 당신이 알기나 하세요? 아이 때는 좋은 학교나 선생님보다도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하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도 뭐라고 말씀하시면서 우셨어요. 그러다 저는 갑자기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께선 전에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워야 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하셨지요? 



저는 지금 20년 전의 엄마보다 더 성숙하고 풍부한 지혜와 생활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우리를 위하셨어요. 어머니는 내심 깊은 곳에는 자신을 돌보거나 이기적인 것이 전혀 없이 자식들의 앞길을 위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줄곧 이것저것을 따지고 저울질 하면서 살아왔어요. 겉보기에는 아주 훌륭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이미 붕괴될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지금까지 한번도 어머니를 용서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사는 자신에게 관용하는 마음이 없고 어머니가 생활경험과 문화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몇 십년간을 원망하다가 지금에 와서 암이 발생한 것을 후회하였다. 


“선생님! 저는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선하게 대하는 것이란 간단한 도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길고도 고통스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비록 제가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제야 비로소 신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마사는 생화로 만든 꽃바구니를 쪽지와 함께 어머니에게 보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엄마! 제게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마사가.” 





글:옥림(玉琳) 












http://www.zhengjian.or.kr/new/bbs/char_j/char_view.php?bbs=life&page=11&seq_no=33092717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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