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믿지 말고 직접 체험해 '스스로 빛이 되라'
현재 카르마 까규파를 비롯해, 티베트 불교는 흥미로울 만큼 전세계에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로 서양에 동양 문화가 혼합되면서 동서양의 문화 차이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서양에 있으면서 동양의 문화를 접했고, 그 가운데에서도 티베트 불교를 접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티베트 불교를 중심으로 법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종교란 무엇입니까. 종교란 과연 무엇일까요.
종교의 종류는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가지로 나눠보고자 합니다. 가까운 동양의 종교와 먼 동양의 종교. 대부분의 종교가 동양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생각입니다. 가까운 동양의 종교는 믿음에 관한 종교입니다. 즉 신을 찾는 종교이지요. 다음은 한국를 포함해, 먼 동양의 종교가 있는데 경험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동양의 종교는 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먼동양의 종교는 신의 행복과는 무관합니다. 도교는 음과 양, 안팎의 조화를, 힌두교에서는 의지의 힘이나 삭티(여신)를, 그리고 불교는 청정하여 파괴할 수 없는 마음의 빛을 깨닫는 것을 추구합니다.
저는 항상 부처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 비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적인 제자들, 그리고 45년에 걸친 전법활동. 35세에 깨달음을 얻은 이후 80세에 열반에 들기까지 부처님은 8만 4천개나 되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8만4천 법문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지요. 첫째는 계율, 둘째는 경전, 셋째는 논장(論藏)입니다. 그러나 넷째 가르침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 가르침을 티베트에서는 금강승 진언밀교(밀교)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금강승 가르침을 다시 두개로 나누셨습니다. 하나는 바르지 않은 것, 즉 불결한 마음을 청정한 마음으로 바꾸는 것인데, 부처님께서 깨끗한 마음이 결국은 우리 마음의 근원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하나의 가르침은 마음이 어떻게 생각과 만물을 만들고 없애는지, 다양한 방편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 부처님은 평생에 걸친 전법에 만족하셨던 것 같습니다. 열반에 들기 전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행복하게 열반에 들 수 있게 됐다. 나에게는 단 하나의 가르침이라도 남아 있지 않다. 중생이나 제자들에게 이익 되는 모든 가르침을 다 주었다. 당부하건데 내 가르침을 무조건 믿지 말라. 직접 스스로 체험하고 자기 자신을 이끄는 빛이 되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쉬운 예로 3층집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자, 각자 눈앞에 그려봅시다. 기둥 3개에, 지붕이 있는 3층집. 서로 대비해 본다면 첫째 기둥은 지식. 둘째 기둥은 명상. 셋째 기둥은 이 두 기둥을 유지시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식에는 정보가 있고 정보는 명상을 통해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이를 넘어지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 수행의 요체입니다.
불교가 집이라면 인과는 이 집의 기초공사입니다. 부처님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올바르게 사용하라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명상수행을 알려주셨습니다. 명상수행을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다시 비구계를 설하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1층은 소승불교이고 2층은 대승불교입니다. 2층의 대승불교에 있어 6가지 바라밀의 실천으로 지혜와 자비가 한쪽으로 치우쳐 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비가 너무 많으면 감상적이기 쉽고, 지혜가 너무 많으면 관료적인 인물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비와 지혜의 조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생각이나 감정들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닌 것을 통찰하는 순간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마음입니다. 거울에 비친 그림이 왔다 갔다 하지만 거울은 그대로 있습니다. 바다위에 파도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 입니다. 마찬가지로 온갖 사량분별이 일어도 본질인 마음은 항상 여여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2층을 지나 3층에 도달하면, 우리가 깊은 명상이나 지혜가 아닌 행주좌와 어묵동정(行往坐臥語默動靜)간에 불성을 느끼게 됩니다. 지혜와 불성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연하자면 3층은 결과로서 일어나는 단계이고 그 밑에 1층, 2층은 인과로서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3층의 단계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금강승 불교라 할 것입니다. 스스로 불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마음과 모든 것이 비어있다는 것을 깨닫는 단계입니다.
모든 것이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여러 요소로 구성돼 있다는 말은 경전에 잘 설명돼 있지요.색(色)이 공(空)이고 공(空)이 곧 색(色)입니다.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습니다. 60년대 가장 최소 물질인 코크를 발견했는데,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도 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색이 됐다 공이 됐다 한다는 말이지요.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존재와 부존재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라는 점입니다.
부처님은 마음의 본성이 비어있음을 깨닫는 순간 두려움과 번뇌가 모두 사라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독일에 있는 제자들과 자주 고공 낙하를 즐기는데. 두려움과 번뇌를 없애주는 좋은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공낙하를 하면 마음에 이는 두려움의 정체와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비어 있으면 마치 텅 빈 공간처럼 해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흥미로움입니다.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본질은 무한입니다.
마음이 스스로를 알아보기 시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즐거움과 함께 자비심이 충만해집니다. 이 힘은 마음이 자기를 알아볼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명상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마음이 자기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흔히 3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사마타(Shamata) 라고 하고 티베트어로 시네(Shine)라고 하는데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호흡을 관하고 사물에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법문은 올레 니달 라마가 2월 14일 부산 금강선원(지도법사 최종열)에서 봉행된 초청법회에서 ‘티베트 불교와 마음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설법한 내용을 게재한 것이다. 이날 법회는 금강선원 최종열 법사의 부인인 슬로바키아 출신의 미카엘라 씨가 지난해 체코에서 열린 올레 니달 라마의 집중수행 프로그램에 참석한 후 직접 올레 니달 라마를 한국으로 초청해 마련됐다.
올레 니달은
올레 니달 라마는 덴마크 출신으로 티베트에서 밀라레파 가르침을 이어받은 까르마 까규파(Karma Kagyupa)의 16대인 걀와 카르마파(Gyalwa Karmapa)의 최초의 서양인 제자다. 1968년부터 까르마파의 요청으로 유럽에서 티베트 불교를 대중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해 30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티베트 불교를 강의하고 명상법을 소개해왔다. 현재 까르마 까규파의 수행은 세계 44개국 479개에 금강승 불교(diamond way buddhism)라는 지부를 두고 확산되고 있다. 842호 [200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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